"Tannoy","아날로그",그리고 LP!

"Tannoy로 듣는 세상의 좋은 音樂들"

"Autograph" 에서 듣는 세상의 좋은 音樂들" 자세히보기

소나타,독주곡,실내악,조곡.外

Sonatas with "Kreisler & Rachmaninov" - 베토벤,그리그,슈베르트.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5. 12. 2. 20:25

천재 바이얼리니스트 "크라이슬러"와 작곡가 이며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가 함께 녹음한 이음반은,

군더더기가 전혀없는 깔끔하면서 담백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티나지 않는 바이얼린 선율에 청아한 피아노 반주는

듣는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또한 결혼식에는 빠짐없이 흘러나오는 "사랑의 기쁨"의 작곡자 이기도한

"크라이슬러"의 이음반은 모노음반이며,1928년도 연주녹음된 귀한음반이며 RCA발매 입니다.

 

 

-"슈베르트"바이올린 소나타5번, '크라이슬러'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1악장,6분30초)-

-"슈베르트"바이올린 소나타5번, '크라이슬러'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2,3악장.연주시간13분30초)-

 

-Fritz Kreisler(1875.2~1962.1)-

그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바이올린 거장의 한 사람이며 바이올린 소품들을 작곡한 신비에 싸인 작곡가이다.

7세 때 빈 음악원에 입학했고, 1885년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과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미국 순회 연주(1888~89)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빈으로 돌아와 의학을 공부했다. 그후 파리와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 육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1899년 바이올린 연주자로 다시 무대에 복귀했다.

그의 기교는 강한 비브라토와 경제적인 운궁법이 특징이다. 1910년 에드워드 엘가 경이 그에게 헌정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했다. 그의 레퍼토리에는 그가 작곡한 소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빈 카프리치오 Caprice viennois〉·〈아름다운 로즈마린 Schön Rosmarin〉·〈사랑의 기쁨〉·〈사랑의 슬픔〉 등이 있다.

그의 〈고전 필사본 Classical Manuscripts〉은 비발디, 쿠프랭, 요한 슈타미츠, 파드레 마르티니와 그밖의 작곡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편곡집의 형태로 출판되었으나 1935년에는 그 자신의 작품들로 인정되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 전통을 잇는 피아니스트 이자 마지막 작곡가였다.

대부분의 작품은 1917년 러시아를 떠나기전에 작곡되었는데,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에는 강렬한 그리움과 조국에대한 향수가 절절히 베어있다.

 

어린시절 "라흐마니노프"는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한후 고향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동주택에서 성장했다.

부모의 별거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못하던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게 되었고,그곳에서 피아노 교사와함께 생활

하며 새벽6시에 기상하여 종일 연습해야하는 엄격한 교칙에 적응해 나갔다. 작곡과 피아노 과목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라흐마니노프"는 오페라 "알레코"로 음악계에 대뷔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고 차이코프스키의 후원도 받았다.

그러나 술에취한채 지휘봉을 잡은 "글라주노프" 때문에< 교향곡1번>을 망친후 언론의 혹평을 받고,거의 3년동안 작곡에

손을 댈수 없었다. 그러나 의사이며 음악가인 "니콜라이 달"의 설득으로 다시 곡을 쓰게되었고, 그렇게 쓴 피아노협주곡 2번은지금도 꾸준히 연주되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이곳 불로그에도 나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삶의터전을 잃고 스카디나비아로 망명했다.그후 25년간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연주활동을

해오다 1943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0년"뮤지컬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유명하다.

"내가 갈수없는 단 한곳은 바로 나의조국 러시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