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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Tortelier" - 차이코프스키 Rococo variations外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5. 10. 11. 21:07

가을에 감상하면 좋을 첼로 앨범입니다. 부드러운 첼로선률은,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쓸쓸하고,때로는 슬픔이 묻어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Rococo 변주곡, "그리그"의 Holberg Suite등 아름답고 애잔한 곡들로 녹음되어 있습니다.

1973년 EMI 레코딩 입니다.

 

 

폴 토틀리에 Paul Tortelier

Mariedi Anders Artists Management
1914년 3월 21일 프랑스 파리 출생. 10세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16세에 수석 졸업했으며, 35년 보스턴 교향악단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다 47년부터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56년 이후에는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작곡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탄탄한 구축력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진지한 첼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케비넷을 만드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첼로를 시작했으면, 12살에 파리 컨서버토리에서 제라드 해킹에게 사사하였다고 합니다. 17세에 라무뢰 관현악단과 랄로의 쳡주곡으로 데뷔했고, 1935년 몬테카를로 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37년까지 연주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브로노 발터나 토스카니니와 같은 지휘자의 지휘아래 연주 했었고,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돈키호테의 첼로 솔로 파트 부분을 작곡가의 지휘아래 연주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유명한 du pre를 직간접적으로 그가 파리 콘서버토리에 재직할때 가르키기도 하였답니다. (Du pre의 직계 스승은 윌리암 플리트)

그가 카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도 한동안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개적으로 보면 그는 두번의 결혼을 하였고, 아들인 Yan Pascal Tortelier는 지휘자로서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76세에 파리 부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Paul Tortellier from Reginald Gray's sketchbook Paris. 1970s.

 

-그리그(1843.6~1907.9)-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 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6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 바이올린의 거장 올레 불의 추천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멘델스존과 슈만 풍의 음악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와 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그를 통해 북부의 민속 가락과 내 자신의 특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는 말한 바 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유럽·영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888년 런던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 민속음악).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작품 16과 〈현악 4중주 G단조〉 작품 27, 바이올린 소나타 및 피아노 소나타 각각 3곡 등 일부 작품에서 자유 소나타 형식을 썼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작품 24는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에 바탕을 둔 변주곡이다.

가장 사랑받는 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작품 23과 〈홀베르그 모음곡 Holberg〉 작품 40이다. 노르웨이의 춤과 노래를 편곡한 작품 17, 작품 66과 특히 〈노르웨이 농민 춤곡 슬로터〉 작품 72는 리듬과 화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감각을 보여준다. 성악곡은 A. O. 비녜의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 33과 시가 〈산의 요정 Haugtussa〉 작품 67이 있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리그는 시의 정서를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다. → 민족음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