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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EIFETZ" - 베토벤Sonatas for violin과piano(9번,크로이처 外).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5. 12. 29. 21:09

 

"베토벤(1770~1827,독일)의 바이올린 소나타"크로이처"를 헌정하려고 했던 사람은 영국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였는데, 아프리카와 폴란드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브리지타워'는 9세에 파리에서 데뷔해 일찍이

이름을 떨쳤고, 연주 여행 도중 빈을 방문해 베토벤과 만났습니다. '브리지타워'의 화려하고 기교적인 연주 스타일에

영감을 얻은 베토벤은 그에 어울리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헌정할 생각으로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작곡했고,

"베토벤"이 피아노를 맡아 함께 초연했지만, 하지만 성격차이를 비롯해 서로 맞지 않아 갈등을 거듭했던 두 사람은

냉랭해지고 말았고, 그러다가 "베토벤"이 1805년,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출판하면서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 하게 되었고, 출판 직전 베토벤과 잠시 교류하면서 좋은 연주의 인상을 남긴 '크로이처'가 결국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헌정 받았는데, 정작 크로이처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이 곡을 매우 못마땅해 해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협주곡과 같은 스타일의 '크로이처'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9번(크로이처), 연주시간31분44초. spu구형 사용.-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violin sonata는 그 어느 연주자가 연주한 violin sonata에 비하여 뛰어난 연주기법이,

돋보이는 음반 입니다."하이페츠" 특유의 강렬하고 짙은 현소리는 듣는 내내 가슴속에 전률을 느끼게 합니다.

유명한 "Op.4(spring)"와 "Op.47(Kreutzer)을 비롯하여 10곡의 바이얼린 소나타가 실려있는 이음반은 5Lp박스반 이지만,

녹음이 잘되어 음질 또한 뛰어나,"베토벤"의 바이얼린 소나타를 마음끗 즐길수 있는,1947년12월16일 녹음된 RCA 제작입니다.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년 2월 2일 ~ 1987년 12월 10일)

하이페츠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연도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 혹자는 1,2년 더 일찍 잡아 1899년이나 1900년에 하이페츠가 태어났다고 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그를 더욱 비범하게 보이게끔 아들의 나이를 2년 더 어리다고 말했을 공산은 있다. 아버지 레우벤 하이페츠(Reuven Heifetz)는 그 곳의 바이올린 교사로, 빌뉴스 극장 관현악단에서 극장이 문닫기 한 시즌 동안 악장을 맡고 있었다. 야샤는 3살때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잡았으며, 아버지가 그의 첫 교사였다. 5살때 그는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의 제자였던 일리야 D. 말킨에게서 배웠다. 야사 하이페츠는 신동으로 7살때 코브노(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서 펠릭스 멘델스존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연주하여 데뷔하였다. 1910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사 레오폴트 아우어 밑에서 수학하였다.

하이페츠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연주하였는데, 베를린의 한 가정집에서 여러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와 더불어 프리츠 크라이슬러를 처음으로 만났다.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하며 12살의 하이페츠에 피아노로 반주했던 크라이슬러는 "우린 무릎으로 우리 악기를 부러뜨려야겠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이페츠는 10대 시절에 유럽 각지를 방문하였다. 1911년 4월, 하이페츠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외 음악회에서 25,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를 하였는데, 선풍적인 반응을 얻어 연주회가 끝나고는 경찰이 이 어린 연주자를 보호해줘야 할 지경이었다. 1914년 하이페츠는 아르투로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였다. 지휘자는 무척 감명을 받아 그렇게 훌륭한 바이올린 주자의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노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하이페츠는 20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손꼽힌다. 하이페츠는 완전무결한 기교와 음색을 보였지만, 아직 여러 연주자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완벽에 가까운 그의 기교와 보수적인 자세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연주가 너무 기계적이며 차갑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버질 톰슨은 하이페츠의 연주 방식을 "비단 속옷 같은 음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칭찬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와 다른 여러 비평가들은 그가 음악가의 의도에 대한 경외심과 그 느낌을 자신의 연주에 주입하고 있다고 본다. 하이페츠의 연주 방식은 현대의 여러 바이올린 주자가 이 악기에 접근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연주는 빠른 비브라토, 감정이 실린 포르타멘토, 빠른 박자, 뛰어난 운궁이 결합되어 하이페츠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풍부한 음색과 인상적인 포르타멘토로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 이작 펄만은 하이페츠의 음색을 이르러 그 강렬한 감정 때문에 "토네이도"같다고 말하였다. 하이페츠는 악기 현을 고를 때도 특별하였다. 연주 인생 내내 그는 G현은 은을 감은 트리코어 거트현으로, D와 A현은 일반 거트현으로, E현은 골드브로캇(Goldbrokat) 강철현을 쓰고 송진을 많이 쓰지 않았다. 하이페츠는 각각의 음을 내는 데 거트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