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noy","아날로그",그리고 LP!

"Tannoy로 듣는 세상의 좋은 音樂들"

"Autograph" 에서 듣는 세상의 좋은 音樂들" 자세히보기

교향곡,협주곡,관현악,등.

"생상스" 첼로협주곡 - Christine Walevska 연주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5. 6. 17. 20:04

"Camille Saint-Saens (1835~1921)"의 첼로협주곡 1번,2번 등이 수록된 이음반은,

"크리스틴 발레브스카"의 섬세한,그리고 아름답다고 표현할수 밖에없는 첼로연주가,

우리나라 에서도 지휘봉을 잡은바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Eliahu Inbal(1936~)"이 지휘하는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더욱 빛을 발합니다.

녹음상태도 아주잘된 이음반은 1974년 "필립스" 레코딩 입니다.

 

-"생상스" 첼로협주곡1번A단조.-

 

 -크리스틴 발레브스카, Christine Walewska (1945- )-

미국의 첼리스트.

크리스틴 발레브스카(Christine Walewska)는 1945년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음악적인 가정환경속에서 성장하였는데,그녀의 어머니는 바이올린 연주하였고 아버지는 골동품 바이올린 판매업자이었다.

크리스틴은 8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13살 때 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에게 사사하였고,첫 데뷔를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발레프스카가 16살이 되었을 때,파리 음악원에서 모리스 마르샬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음악원 음악경연대회에서 그녀는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실내악과 첼로 연주로 1등상을 수상하였다.

 

크리스틴은 첫 번째 녹음인 생상의 첼로 협주곡을 비롯하여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녹음하였다. 그녀는 1970년에 유럽의 필립스 레이블에서 대중적인 첼로 협주곡들을 녹음하였고,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쉐링과 함께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는 행운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18살에 남미를 순회 연주하게 되었고,그런 와중에 아르헨티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Teatro Colon에서 공연을 하였고,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정착하게 된다. 크리스틴은 미국인 연주가로서는 최초로 카스트로 정권하의 쿠바에서 공연하였다.

또한 쿠바와 하바나 음악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카스트로는 그녀의 연주회들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나중에 개인적으로 그녀를 초대하여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12년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1990년에 발레브스카와 그녀의 남편은 뉴욕으로 이사를 왔다.

크리스틴은 뉴욕에서 예술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콘서트 첼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절대 대중의 찬사를 추구하지 않았다.

1998년 그녀는 뉴욕 첼로 협회의 초대로 리사이틀을 개최하였고,열광적인 찬사도 받았다.

특히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에 대한 크리스틴의 해석은 아마도 생존하는 첼리스트들중에서 최고의 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비오 우첼리(Fabio Uccelli)는 다음과 발레브스카를 평가하였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의 음반들중에서,발레브스카의 음반은 작곡가의 의도에 깊이 뿌리 박힌 의미들에 영혼을 전달한다.

발레브스카의 연주는 알렉산더 깁슨의 지휘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1971년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이 작품에 기초를 둔 가장 친밀한 동기 부여를 얻었던 그녀의 여성다운 감성이 바로 이것이다.

무심코 우리는 거의 이 연주와 비교될 만한 연주를 들은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발레브스카 여사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은 파토스와 경건함이 연주속에 깊이 숨어 있다. 1740년산 Bergonzi 첼로로 연주하는 이 협주곡은 베일에 싸여져 있고 드라마틱하다.

더욱이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음색을 혼란시키지도 않고 깊은 흐느낌과 최고의 영적인 순간을 표현한다.

이 연주는 완벽하게 솔리스트로부터 요구되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답한다.”...

 

-Eliahu Inbal(1936~ )-

이스라엘 태생의 명지휘자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78)은 타고난 지휘자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에서 1974년부터 16년간 상임지휘자를 지냈고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1984~1987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교향악단(2001~2006년), 체코 필하모닉(2009~2012년)의 수석지휘자를 거쳐 2008년부터 도쿄도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재직해왔다.

 

-생상스-

교향시(프랑스 작곡가로는 최초로 이 장르의 곡을 썼음)와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 Samson et Dalila〉 등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음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재능있는 피아니스트 겸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비평·시·수필·희곡을 쓰기도 했다. 협주곡과 교향곡은 리스트의 양식을 프랑스의 전통적인 화성과 형식으로 옮긴 것으로 교향곡 3번이 자주 연주된다.

피아노의 신동이었던 그는 1846년 최초의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파리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공부했고, 1855년 교향곡 1번이 초연되었다. 1857년 유명한 파리의 마들렌 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고 20년 이상 이 직위를 지냈다. 이무렵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게 되어 지속적인 친교를 맺었으며, 그로부터 세계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861~65년에 니데르메이어 학교의 피아노 교수가 되었고, 가브리엘 포레와 앙드레 메사제 같은 제자를 키웠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 프랑스 국민음악협회를 창시하는 데 앞장섰는데, 이 단체가 다음 세대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중요한 관현악 작품을 연주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해 최초의 교향시 〈옹팔의 물레 Le Rouet d'Omphale〉가 작곡되었는데, 이 작품은 〈죽음의 춤 Danse Macabre〉과 함께 그의 교향시 4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삼손과 들릴라〉는 성서 인물을 편향되게 그렸다는 이유 때문에 파리에서의 공연이 거부되어, 리스트의 주선으로 1877년 바이마르에서 독일어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1890년에야 파리 에댕 극장에서 공연될 수 있었고, 후에는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가 되었다.

1878년 생 상스는 아들을 잃었으며 3년 후에는 부인과도 이혼했다. 이후 몇 년 간 그는 유럽 전지역과 미국·남아메리카·중동·동아시아 지역을 계속 여행하며, 자신의 5곡의 피아노 협주곡, 그외의 건반음악, 교향시들을 연주하고 지휘했다. 피아니스트로서도 그는 바그너로부터 화려한 기교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마르셀 프루스트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1880년 무렵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극음악과 기악음악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교향곡 3번(1886)은 리스트를 추모하면서 그에게 헌정한 것으로 오르간과 2대의 피아노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같은 해 소규모 관현악단을 위한 〈동물의 사육제 Carnaval des Animaux〉를 썼다. 이 작품은 유머러스한 환상곡으로 생전에는 연주되지 못했으나 죽은 뒤 젊은이들의 연주회용 작품으로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다. 후기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피아노 협주곡 5번(1895)과 첼로 협주곡 2번(1902)이다. 그가 살았던 시절은 바그너가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던 시절이었으나, 그는 별 영향을 받지 않고 고전적 모델을 고수했으며, 세련된 장인정신과 형식감을 강조하는 프랑스 음악의 전통적 관념을 견지했다. 겸손하지만 풍자적인 문체를 보이는 그의 글과 일기는 당대의 음악 실상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