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Fournier"의 바이얼린과 "Antonio Janigro"의 첼로, 'Wiener Staatsoper" 오케 협연으로 녹음된,
이음반은 일반 lp 사이즈의 3/2크기의 lp음반 입니다. 흔히 들을수 있는 곡이지만 연주도, 녹음상태도
아주 잘된 1959년 독일의"Heliodor"社의 레코딩 입니다.
장 프루니에(Jean Fournier 1911~2003)
장 푸르니에(Jean Fournier)는 1911년 7월 31일 프랑스 파리 태어난 바이올리스트이다. 그는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Alfred Brun 클래스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1931년 음악원 주최 음악콩쿠르 대상을 받게 된다. 졸업 후 음악원 콘서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다가 조르쥬 에네스코와 보리스 카민스키(Boris Kamensky), 그리고 이반 갈라미안에게 잠깐 동안 조언을 얻게 된다.
푸르니에는 자크 티보의 권유로 자크 티보-마그리트 롱 클래스에 참여하게 된다. 194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의 콜론느, 라뮈르, 프랑스 국립방송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샤를 문쉬, 앙드레 퀼뤼당스, 헤르만 쉐르헨, 장 마르티농등과 같은 거물급 지휘자들과 협연하게 된다. 솔리스트로서 푸르니에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도휀(Ginette Doyen)과 함께 모차르트, 베토벤, 포레, 드뷔시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고, 엑상-프로망스 음악 페스티발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6년부터 1979년까지 푸르니에는 파리 국립음악원에 재직하면서 음악제자들과 실내악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잘즈부르크 모차르트테움의 교수로도 재직하였다. 또한 롱-티보 콩쿠르, 비엔나프스키, 파가니니등 세계적인 바이올린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푸르니에는 1950년부터 녹음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프랑스 VEGA, Pathe-Marconi, LES DISCOPHILES FRANCAIS 레이블등에서 라사이틀 음반을 비롯한 협연 음반을 녹음하고, 미국의 WESTMINSTER 레이블에서 첼리스트 안토니오 장니그로(Antonio Janigro),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Paul Badura-Skoda)등과 함께 실내악 음반들을 남기었다.
안토니오 야니그로, Antonio Janigro (1918 - 1989)
이탈리아의 지휘자,음악교육가이자 첼리스트.
야니그로는 첼리스트로서보다는 지휘자로서 평가가 더 높다.
1953년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방송국의 위촉을 받고 자그레브음악원 졸업자를 주체로 한 14명으로
자그레브실내합주단(Solisti di Zagreb)을 만들어 지휘자 겸 솔리스트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이다.
아버지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원했던(불행히도 1차 대전 때 오른팔을 잃었다) 만큼,그는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피에르 푸르니에처럼,안토니오는 처음에 피아노로 시작하였지만 곧 첼로에 매혹되어 이 악기로 바꾸었다.
다행히도,이 방향 전환은 푸르니에처럼 개인적인 불행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의 진보는 빨라서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카잘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어 그의 추천으로 1934년부터 파리의 에콜 노르말에서 디란 알렉사니안(Diran Alexanian)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대 중반에 에콜 노르말에는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코르토와 티보,카잘스,불랑제 등의 선생들은 물론이고,동문 중에는 리파티가 코르토에게 발굴되어 와 있었다.
그는 후에 리파티와 방송 녹음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솔로 활동을 1936년부터 시작했는데,1차 대전이 부친의 인생을 크게 바꾸었듯이,조금 후에 발발한 2차 대전은 그의 생활 본거지를 크게 바꿔 놓았다.
1939년 휴가 차 유고슬라비아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전쟁 발발로 인해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던 그에게 자그레브 음악원에서(불과 21세였다) 첼로 교수 자리를 제공했다.
그는 이 때부터 자그레브에 거의 정주하며 이 도시의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2차 대전 후에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및 남아메리카까지 국제적으로 여행하면서 독주자의 명성을 확립했다.
에리히 클라이버는 그와 드보르작 협주곡을 협연하고 나서,그의 연주를 "비견할 사람이 없다"고 간단히 표현했다.
당시 떠오르는 별과 같던 Westminster label에서는 야니그로를 전속 첼리스트로 많은 녹음을 진행했는데,이 때 이미 그는 명성을 완전히 확립한 상태였다.
첼리스트로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쉽지만,1950년대 말부터 그는 자그레브 실내 합주단(Solists di Zagreb)의 지휘자로 주로 활동했으며,레코드 녹음 기록으로 볼 때 솔로는 부차적으로 밀어 놓은 감이 없지 않다.
1960년대에는 자그레브에서 조직한 방송 교향악단을,그 후 자르브뤼켄의 방송 교향악단 등의 자리에서 바로크 및 고전 뿐 아니라 리게티 등의 현대 음악을 다루기도 했다.
1960년대는 그가 지휘자로서 Vanguard에 가장 활발하게 녹음을 많이 하던 시대였는데,1970년 후 녹음 기록은 없다.
그 후 잘츠부르크에서 카메라타 아카데미카를 몇 년 지휘했는데,의외로 녹음이 보이지 않는다(이 앙상블은 후에 바이올리니스트 샨도르 베그가 맡았다).
그는 만년을 자그레브에서 보내다가,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밀라노에 돌아갔을 정도로 자그레브를 좋아 하였다.
그가 만드는 음악은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묘하게 번져 오고 씹을수록 맛이 나는 느낌을 준다.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의 강렬함이나 큰 스케일과는 방향이 사뭇 다르다.
비발디의 소나타는 단정하면서 자연스럽다.
푸르니에가 왜 이 레파토리를 전부 녹음하지 않았을까 항상 아쉬워했던 차에 매우 좋은 음반이다.
드보르작의 협주곡에서 느끼는 것처럼,가끔은 좀 큰 스케일의 활달함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그에게
이런 것까지 기대하기는 좀 무리 아닌가 싶다.
바흐 무반주 모음곡도 별미이고,이런 해석으로 듣는 베토벤의 소나타는 특히 감탄을 자아낸다.
의외로 잘 어울리며,로스트로포비치/리히테르 콤비에게 이미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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