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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int Evans" - Arias 모음(스위스Romande오케-Bryan Balkwill)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5. 10. 19. 08:46

테너에 비하여 베이스-바리톤은 다소 답답하게 들리는데, "에반스"의 굵직하면서도 매끄럽게 뻗어나오는

목소리는 듣는이로 하여금 테너와는 또다른 시원함을 느끼게 합니다.핸델의 "Berenice"등 우리에게 친숙한

오페라지만, 베이스-바리톤 으로 듣는 아리아들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음반은 1966년 데카 레코딩입니다.

 

 

 

웨일스의 음유시인 Geraint Evans (제렌트 에반스1922,2/16~1992,9/19)

제런트 에반스 경


영국 웨일스 출신의 베이스-바리톤 "제렌트 에반스"는 1922년 작은 광산촌인 실피니드(Cilfynydd)에서 태어났다. 웨일스어인 실피니드는 영어로 ‘산의 끝자락’이란 뜻이다. 실피니드는 그만큼 외진 마을이었다. 웨일스 사람들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공명이 잘되는 음성을 지니고 있다. 리챠드 버튼, 귀네스 존스, 딜란드 토마스(Dyland Thomas) 등이 증인이다. 중세기로 돌아가서 풍부한 음성의 웰쉬 음유시인들은 궁정에서 유쾌한 발라드를 자주 불렀다. 셀틱(Celtic) 이름인 제렌트(Geraint)는 전설적인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중 한 사람의 이름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때 제렌트 에반스가 나중에 베르디의 뚱뚱한 기사인 존 활슈타프경(Sir John Falstaff)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해석하는 베이스-바리톤이 되었으며 195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CBE)를 받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웨일스 사람들은 체격으로 보나 기질로 보나 이탈리아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웨일스 사람이 흥분하면 말하는 것이 이탈리아 사람처럼 기관총을 쏘는 것과 같다. 제렌트 에반스는 꿰뚫는 듯한 검은 눈매, 거무스름한 얼굴색, 굵고 검은 머리칼 등 모습으로 보나 맨너로 보나 전형적인 웨일스 사람이다. 1960년 라 스칼라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를 맡았을때 밀라노 사람들은 그가 시실리 출신인줄로 알았다. 사람들은 거의 모습이 이탈리아 사람과 비슷한데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이탈리아 딕션을 흠잡을데 없이 구사하는데 대하여 마치 자기나라 사람을 보는 듯 즐거워했다. 그러나 에반스는 다른 웨일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웨일스 사람인 것을 강력하게 내세우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음악가정에서 태어난 에반스는 어릴때부터 마을 교회 성가대에서 소년 소프라노로 활동했다. 지휘는 시리피니드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 즉 에반스의 아버지였다. 에반스는 어머니로부터 성악 수업을 받았다. 어머니는 소프라노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 파악하고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레슨등 모든 음악적 기회를 제공하였다. 17세가 되자 에반스의 음성은 원숙하고 깊이가 있는 바리톤으로 완성되어 여러곳에서 솔리스트로 초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2차 대전이 터지자 성악공부는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에반스는 영국공군에 입대하여 정훈장교로서 영국군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의 활약을 했고 전쟁이 끝나자 독일에 가서 성악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독일에서의 성악 선생은 유명한 독일 베이스인 테오 헤르만(Theo Hermann)이었다. 헤르만은 전쟁중 영국군방송을 통하여 에반스의 노래를 들은 일이 있고 그의 재능을 깊이 인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후 에반스는 1948년 코벤트 가든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베이스 역을 맡아 출연함으로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코벤트 가든은 외국에서 유명 성악가들을 초청하는 것 보다는 영국내에서 성악가들을 확보하여 등용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전후 첫 레지덴트 아티스트(전속 성악가)는 호주 출신의 조안 서덜랜드였다. 에반스는 두 번째였다. 에반스는 처음에 간단한 역할만을 맡았지만 곧이어 대표적인 역할을 맡아 우뚝 서게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역할은 파파게노(마적), 보체크, 활슈타프이었다. 1964년 메트로 초청 데뷔 역시 활슈타프로였다. 그렇지만 단연 반항적인 피가로와 휘델리오에서의 악독한 돈 피짜로(Don Pizzaro), 그리고 유쾌한 레포렐로(돈 조반니)를 꼽지 않을수 없다. 평론가 어빙 콜로딘은 ‘수세기만에 처음으로 가장 예술적인 노래를 부른 하인이었다. 훌륭한 하인은 주인과 차이가 없다는 영국식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부인 브렌다(Brenda) 역시 웰쉬 출신이다. 에반스에 의하면 부인 브렌다는 자기의 연주에 대하여 가장 훌륭하고 가장 혹독한 비평가라는 것이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며 가정에서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발견하고 있다. 비평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발전의 원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