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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書 공부"

廬江志(여강지)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3. 1. 1. 14:14

1573년에 李滉(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안동의 虎溪書院에 관련된 기록들을 모아 편집한  책입니다.

 

 

-호계서원-

1573년(선조 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월곡면 도곡동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이 때에는 여강서원(廬江書院)이라고 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김성일(金誠一)과 유성룡(柳成龍)을 추가배향하였으며, 1676년(숙종 2)에 ’호계(虎溪)‘라 사액되었다. 그 뒤 이황은 도산서원, 김성일은 임천서원, 유성룡은 병산서원에서 주향(主享)함에 따라 호계서원은 강당만 남게 되었다.

그 뒤 1973년안동댐건설로 수몰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강당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평면상으로는 一자집이나 지붕 양쪽 끝만이 정면을 보고 있는 맞배지붕으로서 날개집 지붕과 비슷한 매우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체형태는 ㄷ자형으로 겹처마집이다.

 

-廬江志(여강지)에 관련된 문건-

1870(고종 7) 호계서원에서 호파 유림 600여 명, 병파 유림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심동신이 대원군의 지시를 전하면서 단합을 촉구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원군은 크게 실망하고 화를 내면서 다시 심동신과 류후조에게 지시했다. 9월에 이어 12월에는 마침내 호론과 병론을 대변하고 있는 대산실기(大山實記)여강지(廬江誌)판본을 관정에서 파괴함으로써 보합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합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400년이 지난 최근에야 호계서원의 사당 복원사업을 계기로 경상북도 당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서애를 왼쪽, 학봉을 오른쪽에 종향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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