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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로린 마젤(Lorin Maazel)"- "차이코프스키"Symphony no.1 in G minor, Op.13.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6. 11. 24. 20:06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1번 교향곡 이지만,교향곡 5번,6번(비창)에 비해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지만,1866년도에 작곡된

교향곡1번은 뛰어난 테크닉이나 화려함은 없지만,듣고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편안해진다.

"차이코프스키"의 감성적인 음악은 러시아 민요와 서유럽의 작곡법, 국민주의와 개인적인 이념등 여러 요인에서 영향을 받은것이다.

그의 동성애 성향이 음악에 미친 영향과 죽음에 대한 의문들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이와 별개로 그의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는 한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음반은 "로린 마젤"이라는 거장의 지휘와, "비엔나 필"의 주옥같은 연주가 돋보이는 명반이라 할수있습니다.

-1965년 "데카"레코딩 임-.

 

 

 

 

 

-Lorin Maazel(1930,3~2014,7)

 

로린 마젤

 

음악적 환경에 둘러싸인 어린 시절

로린 마젤은 미국의 지휘자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러시아 태생 유대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피츠버그에서 자랐다. 마젤의 가정은 그에게 훌륭한 음악적 배경을 제공했는데, 아버지 링컨 마젤(Lincoln Maazel)은 가수이자 배우였고, 어머니 매리언 셔먼 마젤(Marion Shulman Maazel)은 피츠버그 유스 교향악단을 창립한 음악인이었으며, 할아버지인 아이작 마젤(Isaac Maazel)은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마젤은 이러한 환경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지휘를 공부했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린 마젤(1939년)
어린 시절의 로린 마젤(1939년)

 

어릴 적부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신동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마젤은 아홉 살 때부터 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그중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초대로 지휘한 NBC 오케스트라,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와 함께 지휘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이후 중요한 인연이 될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이 있었다. 피츠버그 대학에 진학한 후엔 음악이 아닌 언어학, 수학, 철학을 전공하면서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으며, 1951년엔 풀브라이트 연구원 자격으로 이탈리아에서 바로크 시대 음악을 연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초, 마젤은 거쉰의 친구인 헤수스 마리아 산로마(Jesús Maria Sanromá), 캐롤라인 롱(Carolyn Long) 등으로 구성된 거쉰 콘서트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유럽 연주여행을 했고, 1960년대에는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역대 최연소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하기도 했으며,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로린 마젤(1950년대)

 

세계 곳곳을 누비며, 2008년에는 평양을 방문하기도

1972년, 마젤은 조지 셸(George Szell)의 후임으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1982년까지 10년 동안 악단을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악가들과 함께 거쉰의 〈포기와 베스〉를 최초로 녹음하기도 했다. 마젤은 여러 악단을 동시에 이끌었는데, 1977년부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1988년부터 피츠버그 교향악단, 199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감독했으며,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 필하모닉을 이끄는 동안에는 발렌시아나 대중 오케스트라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필하모닉의 지휘도 맡았다. 2008년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드보르자크와 거쉰의 작품, 그리고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했다. 잘츠부르크와 루체른, 메트로폴리탄 등의 오페라하우스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1982년부터 3년간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11년 그는 마지막 역할인 뮌헨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의 로린 마젤(1977년)

 

넓은 스펙트럼

마젤의 음악활동은 그 스펙트럼이 특히나 넓다. 그는 〈돈 조반니〉(1979)를 비롯해 오페라 영화의 사운드트랙 지휘를 맡았는가 하면, 조지 오웰의 《1984》를 기반으로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가사 없이 모음곡으로 편곡해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부터 7년간 매년 빈 신년음악회를 지휘하고, 이후에도 4번이나 지휘자로 초청받았다. 아내와 함께 캐슬톤 지역 농장에서 여름 음악 축제를 운영했는데, 마젤은 2014년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는 음악적 활동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독일 대십자 공로훈장, 프랑스 레종 도뇌르, 핀란드 사자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