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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noy"오토그라프"사운드.

"쇼팽" Nocturnes- "루빈스타인"연주.[탄노이 사운드].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8. 12. 4. 19:46

유명한"쇼팽 "의 녹턴op.9, no.1을 지금은 타계한 천재 피아니스트"루빈스타인" 연주로 듣습니다.

 

 

"쇼팽"의 "Nocturnes Op.9".-

"아더 루빈스타인(1887~1982)"은

 3세 때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8세 때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이듬해에는 베를린에서 하인리히 바르트의 제자가 되었다. 6세에 처음 연주회를 열었으며 13세에 베를린에서 유럽 데뷔를 했다. 1906년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함으로써 미국에서 데뷔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런던에서 군 통역사로 복무했고 바이올린 연주자 유진 이자이와 협연하기도 했다. 1916년 스페인을 방문해서 파야와 엔리크 그라나도스의 작품을 소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1919년에 가진 2번째 미국 연주에서는 활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1920년대에는 국제적 명사로서 명성을 굳혔으나 1928년 훗날 아내가 된 아니엘라 믈리나르스키를 만난 이후 자신의 예술성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롭게 음악에 헌신하여 매일 6~9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이전에 습득한 화려한 기교에 새로운 훈련을 쌓았다. 그는 1937년 다시 한 번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천재적인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그후 베토벤·모차르트·알베니스·라벨·스트라빈스키·쇼팽 등의 작품을 두루 섭렵한 방대한 레퍼토리로 명성을 떨쳤고, 특히 쇼팽 해석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46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재치있고 외향적이던 그는 달변으로도 유명했지만 일단 무대에 서면 연주에 몰두하는 진지한 연주자였다. 200장이 넘는 음반을 취입하였고 1976년 미국 자유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2권으로 된 자서전인 〈나의 젊은 시절 My Young Years〉(1973)과 〈오랜 나날들 My Many Years〉(1980)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