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반 베토벤(독일,1770~1827)"이 작곡한 수백개의 곡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곡들 이지만,
이음반에 실린 '첼로 소나타' 전곡 또한 첼로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곡들이고, 또 유명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야노스 슈타커'등의 음반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카잘스'의 이음반이 최고 입니다.
"카잘스"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호르쵸프스키"의 명연주를 감상할수 있는 앨범 입니다.
1930년부터 1939년에 걸쳐 녹음된 이음반은 EMI독일반인 Electrola 제작 입니다.
"카잘스"의 독특한 첼로연주는, 약간의 쇳소리(?)와 고역이 카랑카랑 합니다.이 음색은 "카잘스"연주의 모든음반에서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짙은 잿빛과 같은 이 음색을 선호하시는 매니아들이 많고, 역시 저도 좋아합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3번'('카잘스'연주,연주시간20분5초.),아래 동영상(솔 가베타의 첼로, 조성진의 피아노)과 비교
하세요!-
<첼로 소나타 1번,2번>
특히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첫 결실인 Op.5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위촉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그가 원래 베토벤에게 주문한 편성은 현악 4중주였다. 하지만 베토벤은 음악 애호가이자 수준급 첼리스트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를 위해서 〈첼로 소나타〉 Op.5의 두 곡을 작곡해 헌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왕 전속 첼리스트였던 장 루이 듀포르와 함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앞에서 연주했다. 안타깝게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첼로 소나타3번>
덩달아 화려해진 피아노 파트마저도 첼로의 기세를 압도하지 못할 정도로 첼로 소나타 3번에서의 첼로는 충분히 위풍당당하고 남성적이다.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첼로가 저음역을 보강하는 역할만을 했던 통주저음 악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일부러 상기시켜야 할 정도로 첼로는 이제 완전한 독주악기로서 존재하게 된다.
베토벤은 〈첼로 소나타 3번〉에서도 전작의 Op.5의 1, 2와 달리 3악장 구성의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느린 2악장은 배제시켰다. 대신 2악장은 빠른 스케르초로 대체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3악장을 느린 템포의 아다지오 칸타빌레로 도입했는데 피아노의 선율에 얹힌 첼로 특유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음색이 돋보인다. 느린 서주는 곧장 경쾌하고 활기찬 알레그로 비바체로 이어져 박진감 넘치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첼로 소나타5번>
'베토벤'은 〈첼로 소나타 5번〉 Op.102-2에서는 마지막 악장에 푸가를 도입해 창작 후기에서 발견되는 바흐에 대한 존경심과 전통적인 음악 재료에서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잘 다져진 고전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구 양식에 관해서도 완벽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가 본에서 만난 첫 번째 스승인 고틀로프 네페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교과서처럼 암기하도록 가르쳤고, 이때부터 베토벤은 바흐의 푸가 기법을 자신의 음악 속에 다채롭게 응용할 수 있는 구사력을 훈련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구사력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베토벤의 후기였다. 베토벤은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푸가 기법을 사용한 걸작들을 집중적으로 쏟아놓게 되는데, 특히 현악 4중주를 위한 마지막 악장으로 작곡했다가 너무 난해해서 따로 분리했다는 〈대푸가〉를 비롯해서 〈장엄미사〉의 ‘글로리아’와 ‘크레도’, 그리고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들이 바로 그런 증거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고도의 연주력을 필요로 하는 베토벤의 푸가 부분을 가리켜, 어떤 이들은 그가 청력을 상실하면서 실제적인 음향 대신 개념적인 음향에 집착한 결과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연주됐을 때 엄청난 힘을 내뿜는 베토벤의 푸가는 허공에 떠도는 상상의 소리가 아닌,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삭혀온 바흐라는 존재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린다.
*아래 youtu.be클릭하면, '솔 가베타'의 첼로와 '조성진'의 피아노, '베토벤,첼로소나타3번'을 감상 합니다.
-Pablo Casals(1770~1827)-
대가다운 기교, 세련된 해석, 최고의 음악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어린 나이에 작곡·첼로·피아노를 배운 뒤
1891년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했다. 마드리드와 브뤼셀에서 더 공부한 뒤 1896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란 테아트로 델 리체오의 수석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이무렵 왼손의 포지션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고 좀더 자유로이 활을 움직이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는 듯하고, 노랫소리를 곁들여 중얼거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했다. 1898~1971년 세계 곳곳을 순회했으며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 자크 티보(바이올린)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해 명성을 떨쳤다. 첼로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 후 1919년 파리의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의 창설을 도왔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했다.
파시즘에 공공연히 반대하여 1936년 카탈루냐와 프랑스의 국경 근처 프라드로 강제 이주당했다. 스페인 내란(1936~39)이 끝난 뒤 귀국을 거부했다. 1946년에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에 항변하기 위해 공개 연주회에서 은퇴했지만, 1950년 다시 지휘와 음반활동을 재개하여 부분적으로 침묵시위에서 벗어났다. 1956년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해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평화를 위한 개인적 음악운동을 계속했다. 모더니스트들의 메마르고 정직한 해석을 거부한 낭만주의자로서, 바흐에 대한 애정이 그의 감수성의 핵을 이루었으며, 특히 6곡으로 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연주로 바흐 첼로곡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앨버트 칸과 공저한 자서전 〈기쁨과 슬픔 Joys and Sorrows〉(1970), H. L.커크가 쓴 〈파블로 카잘스 전기 Pablo Casals:A Biography〉(1974)가 있다.
특히 200년동안 빛을 보지못하고 묻혀있던 "바흐- 무반주첼로"의 악보를 헌책방에서 구입해 연주하기 시작한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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