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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spar Sanz"의 'Espanola모음곡'-"Narciso Yepes"연주.[tannoy sound]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21. 2. 8. 18:12

이 음반에 실려있는 'Espanola 모음곡'은 "Gaspar Sanz(스페인, 1640~1710)" 작곡으로, "Sanz"는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며, 작곡가이자 기타, 오르간 연주자이며, 카토릭 교회의 사제입니다. 이곡은 피아노 곡으로 작곡된 것을 기타 곡으로 편곡되었고 기타 연주가 더 많이 남아 있는데, 연주하기 가 꽤나 까다로운 이곡에는 '전설 Leyneda'이라는 별칭이 붙어있습니다. 이 음반은 흔하지 않은 기타 독주곡 으로 담백한 기타의 참 맞을 느낄 수 있는, 1972년 '데카' 레코딩입니다.

 

-'나르시소 이에페스'가 연주하는 'sanz' 작곡의 'Suite Espanola'(연주시간 12분 40초)-

 

"나르시소 이에페스(1927~1997)"는 1927년 11월 14일 스페인의 무르시아 근교 로르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으며, 한적한 시골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였지만 아버지는 자식이 농사꾼 이외의

일을 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발렌시아 음악원 재학 시절 그는 작곡가 'Manuel Palau', 기타리스트 'Marco Garcia de la Rosa',

지휘자 'Lamonte de Grignon' 등에게 작곡법과 기타 연주법 등을 사사하였습니다.

그는 동음악원의 'Vicente Asencio'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센시오 교수는 이에페스 앞에서 유창한

피아노의 스케일을 연주하고는 기타로 그 스케일을 연주해 보도록 지시하였다 합니다.


빠르고 큰 음량의 피아노 스케일을 기타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음에도 아센시오는 쩔쩔매고 있는

이에페스에게 "기타란 악기는 음계 하나도 제대로 연주해 낼 수 없는 악기란 말이다"라는 말을 던졌다고 하며

이에페스는 큰 상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페스는 몇 번이고 노력하여 음계의 속도와 질감을 높였으며 기타 특유의 주법인 트레몰로를 필사적

으로 연마하여 다시 아센시오 교수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교수의 앞에서 유창하게 스케일을 연주한 이 에페스는

갈고닦은 실력으로 트레몰로 곡을 연주하였다. 어떻게 보면 아센시오 교수야말로 이 에페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스승이 아니었나 합니다.


1946년 발렌시아 음악원을 졸업하고 수도 마드리드에 정착하여 음악활동을 준비하던 그는 당시 최고의 비루투오조

중 한명이었던 레히노 사인즈 데 라 마자에게 헌정된 로드리고의 명작 아란훼즈 협주곡의 마드리드 초연을 지휘자 Ataulfo Argenta에게 제의받게 됩니다.연주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페스라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은 이를 계기로

스페인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55년에는 역시 아르헨타의 지휘로 이 곡을 취입하게 됩니다.

1952년 이에페스는 영화감독 르네 끌레망의 방문을 받고 그가 만들고 있는 영화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됩니다. 그 영화는 다름아닌 지금은 고금의 명작으로 전해지는 "금지된 장난(Jeux interdits)"이었습니다.

영화는 엄청난 성공를 거두었고, 이 명작에서 사용된 이에페스 연주의 애잔한 Romace의 선율은 전세계인의 가슴에

큰 감동을 심어 주었습니다.

 

기타 제작자 파울리노 베르나베에게 의뢰하여 저 유명한 이에페스의트레이드 마크인 10현 기타 "Decacorde"를

만들게 됩니다(1964). 이러한 다현기타의 발명은 이에페스의 역사적 탐구에 입각한 것으로실제 19세기까지 많은

다현기타가 제작 연주되었다는 사료를 연구하여 그 전통을 이은 것으로 오늘날 다현기타를 연주하는기타리스트

들의 효시가 된 셈입니다.

 

그는 음악으로 스페인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각종 서훈과 표창을 수없이 받은 마에스트로였지만,

자신의 고향 로르카를 평생 잊지 않았으며 사석에서는 소박한 시골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연주회장에서 연주를 시작하기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우리는 모두 한가지 목적,

아름답고 지고한 음악의 세계를 함께 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까 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고 합니다.

만년인 1980년대 그는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인 상태에서도멀리 한국을 방문,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1997년...그는 멀고도 영광스러웠던 음악인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