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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사모" 얘기들!

"가을은 첼로의 계절(4)"-"悲運의 첼리스트".<Autograph sound>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20. 11. 3. 19:08

그야말로 타국에서 들어온 역병으로 인해, 모임도 뜸하고, 시내 나드리도 그렇고, 그래서

'드라이브 스루'가 유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부부도 차량을 이용한 여행(?)을 경상도 북부지역의

양반도시라 하는 '영주'를 갔습니다. 마침 점심시간 이라서, 맛집 검색에서 찾아간 집입니다.

매뉴판이 간결하게 '달랑 두가지' 뿐인데도 홀이며 방이며, 맛객들로 북적입니다. 간결한 매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것 같습니다.

 

저는 Tannoy의 간결한 유닛을 좋아합니다.둥글고 큼직한 '우퍼'와 그중앙에 깊숙히 내장되어 있는

'트위트'는 간결하면서도,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음미하는 맛이 있습니다. 특히 "오토그라프"의

전면의 깊은곳에 부착된 유닛은 '혼'의 역활도 하지않나 생각은 하지만, 음향 기술자가 아니라서

확실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어쨌던 고역의 직진성이 좋아 현소리 에는 Tannoy가 좋다고들 하나봅니다.

 

-남편인 "바렌보임"에게 버림받고, 42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크린 뒤프레"

가연주하는 "엘가" 첼협을 녹음했습니다. '엘가'를 가장 엘가답게 연주 한다는............................

"에드워드 엘가(영국,1857~1934)"의 작품에는 대담한 선율과 충격적인 음색 효과, 대규모 형식이 특징인 19세기말

낭만주의 관현악 어법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그의 작품은 영국 음악의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연주한다는, '오펜바흐'의 <자크린의 눈물>의 주인공이된 "자크린 뒤프레"가 연주하는"엘가"첼로협주곡. 조용히 듣고있으면, 눈물방울이 맺혀있을듯한 "자크린"이 떠오릅니다.

(spu구형,연주시간30분30초)-

悲運의 첼리스트"Jacqueline Du Pre"(자크린 뒤 프레.1945.1~1987.10)

영국 오스포드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자클린"은 세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중에서 특히 첼로음을 지적하며 그소리를 내고싶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네살때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받고, 다섯살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 그녀는 "카잘스"와 "토틀리에" 그리고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배움을

가져 어린나이에 금세기 첼로의 대가 들로부터 첼로계의 모든 흐름을 두루 섭렵 할수있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무대를 가졌고 65년에는 뉴욕에 데뷔하면서,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서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 23세이던 68년에는 가족이 탐탁치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유태인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과 결혼했는데, 28세 되던 73년,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 활동의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지는 못하지만 그와의 결혼이 재키(뒤 프레의 애칭)에게 음악적으로 좀 더

성숙할 수 있었고,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렌보임"에 의해 "뒤 프레"가

좀 더 많은 순회 공연과 "바렌보임"이 지휘자로서 경험을 쌓는 동안 협연자로 혹사 당했다는 사실 역시 사실입니다.

"뒤 프레"가 "다니엘 바렌보임"에 대한 사랑은, 유태인이었던 "바렌보임"을 따라 중동과 전쟁(6일 전쟁) 중이었던

이스라엘까지 날아가 '이스라엘 교향악단'과 협연한 사실만 보더라도 "자크린"의 그에 대한 사랑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음반으로는 엘가의 첼로협주곡(EMI)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며, 코바셰비치와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EMI)도

수작이며, 그녀의 미소와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라도 자클린느 뒤 프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에 위안을 받는답니다."뒤 프레"의 전기 작가 '캐롤 이스턴'은 읽기도 말하기도 힘들게 된 말년의 "뒤 프레"는 자신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들을 때마다 몸이 찟겨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눈물 조각처럼" 그러곤 고개를 떨구고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언젠가 영국 BBC에서 제작한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신의 어머니 무덤에도

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녀의 무덤에 단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가 설령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실제로 그의 연주와 지휘는 훌륭한 것들이 있다.) 그의 음반은 사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적이 있다. "자클린느 뒤 프레"는 남편이 한 번도 찾아와주지 않는 무덤에 홀로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