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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이야기

tannoy 사운드- 과거와현재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06. 10. 5. 19:10

브리티시 왕국의 군주 ”




탄노이 사운드(Tannoy Sound)

 영국을 대표하는 오디오 브랜드이자 브리티시 사운드의 원조로서 일세를 풍미해온 스피커 전문 업체가 바로 탄노이이다. 탄노이는 1926년 창사 이래 70여년에 이르도록 일관된 제품 폴리시를 유지해오면서 브리티시 사운드의 맹주라는 위치를 변함없이 유지해오고 있다.

가장 부드럽고 유장한 음색과 여유롭고 풍요로운 음장을 무기로 아날로그 오디오 시대의 반세기 동안 정상의 브랜드로 활약한 바 있으며, 디지탈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시대의 변천에 침몰하지 않는 영원한 명문으로서 위세와 가치를 지키고 있는 탄노이의 역사는 그대로 스피커 시스템 발전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오토그래프라는 불후의 명기를 비롯하여 RHR Prestige, GRF Memory, Westminster, Kingdom으로 이어지는 하이엔드 대작들의 성공과 LSU/HF/15로 출발하여 모니터 실버, 모니터 레드, 모니터 골드를 거쳐서 HPD로 완성된 [1]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독창적인 기술 혁신 그리고 외일드 캐츠를 위시한 업무용 SR 스피커 시스템들의 부단한 개발력 들은 현재의 탄노이 사운드를 형성시켜온 기틀이자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어메리컨 사운드의 기수로서 미국에 알텍, EV, JBL이 있다면 영국에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군주로서 탄노이가 있다. 전통과 관록의 음악적 무게와 더불어 영국적 품위와 기품으로 사색의 깊이를 가지는 사운드가 탄노이만의 음역이다. 그 넓고 두터운 음질 세계를 더듬어 본다.

'Tannoy Ltd'의 출범

 Tannoy Ltd

탄노이는 영국의 간판 오디오 브랜드이자 브리티시 사운드의 원류를 형성시켜온 스피커 전문 업체이지만 애초에 회사의 출발은 스피커가 아닌 정류기 개발품으로 시작되었다. 1900년 영국 요크셔의 공업도시 리즈 근교에서 출생한 가이 R. 파운틴(Guy R.. Fountain)은 약관 22세의 나이에 런던 웨스트 노우드 털즈머가에서 친구와 함께 ‘Guy R.. Fountain Ltd.'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을 졸업한 가이 R. 파운틴은 본래 항공대에 입대하기를 원했으나 1차대전 종식으로 이것이 무산되자, 런던의 웨스트 노우드에 거처를 두고 조판 전문 제조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 때에 그는 처음으로 랭커스터 자동차 회사에 관련한 수준생산 형태로서 코치 워크(Coach Work) 생산 업체인 ‘Guy R.. Fountain Ltd.'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192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에는 미국 전역에 영화 산업이 화려하게 개막되었으며, 구미를 막론하고 라디오 상업 방송이 개막되어서 음성 증폭 앰프나 라디오 수신기의 진공관 증폭기의 역할이 날로 증대하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진공관 증폭기를 상용하려면 필라멘트를 가열하기 위한 낮은 직류전압이 필요했었고 이는 주로 건전지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진공관 증폭회로에 필요한 높은 직류전압의 공급은 축전지를 활용했지만 수명이 짧고 가격이 비싼 연산 건전지나 고가격에 충전의 번거로움이 큰 축전지의 한계 때문에 가정용 전원인 AC를 아예 DC로 바꾸어 주는 정류 장치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였다. 가이 R. 파운틴은 바로 이같은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류기의 제작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1926년 그는 드디어 가정용 [2]전해 정류기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하였다.

가이 R. 파운틴이 개발해낸 이 정류기는 탄탈륨 합금(Tantalum Alloy)을 주 성분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그 합성어의 의미를 부여해서 ’Tannoy'라는 상표로 판매되었다. 또 애초에 ‘Guy R.. Fountain Ltd.'로 시작한 가이 R. 파운틴의 회사명 역시 오늘날과 같은 'Tannoy Ltd'로 개명되었다. 브리티시 사운드의 원류로서 전통의 탄노이 사운드는 스피커 제조 업체로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정류기 제조 회사로서 출범하였다.

탄노이의 스피커 제조와 SR 사업

1920년대 후반 이후 무선 방송의 실용화와 더불어 고출력 증폭의 송, 수신기 보급과 공공 시설을 위한 음향 시스템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정류기의 생산, 판매로 시작한 탄노이사는 이러한 분위기에 부응하여 일반적인 다이내믹 라우드 스피커의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앰프 제조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제반 음향 기기들의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계측기의 연구에도 투자를 하게 된다. 저주파 및 고주파 발진기, 왜율계, 주파수 특성 측정기 등의 기획으로 ‘Tannoy Research Laboratory'를 개설하여 모든 전자 기기류를 과학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체제를 수립해나갔다.

이와 더불어 가이 R. 파운틴은 간단한 주파수 특성의 측정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스피커 성능 체크법에 있어서도 처음으로 마이크로폰을 활용하는 성능 검토법을 시도함과 동시에 마이크로폰의 개발에도 착수하였다. 결국 이 당시의 마이크로폰 개발은 후에 탄노이 스피커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는데, 이는 듀얼 콘센트릭 사운드를 내세우는 동축형 유닛 개발에 결정적 바탕이 되기도 했다.

탄노이가 최초로 스피커 개발, 제작을 시도하였던 것은 직류에 의하여 작동하는 무빙 코일형 자기회로를 가진 유닛을 개발 생산하기 시작한 1930년부터였는데, 이후 탄노이는 전쟁과 함께 성장하였던 업무용 음향 시스템 사업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스피커 전문 제조회사로서의 골격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하여 영국의 사회 경제 전반은 불가피하게 전시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에 따라 탄노이 역시 제조 생산 시설을 군수형 시설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각종 군수용 통신 및 통제 장비, 공습 경보 시설, 공공용 음향 시설 등을 분담 생산하게된 탄노이는 1943년 웨스트 노우드의 제 2 공장이 독일군 공습으로 파괴되고 종업원들이 살상되는 군란을 입으면서도 곧 이를 복구하여 정상 가동시키는 끈기와 집념으로 회사의 기틀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탄노이는 1945년 전후부터 일반 음향관련 사업과 [3]공공 시설의 SR 음향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 기술적, 산업적 능력을 확실하게 보유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 탄노이는 주로 군수 통신 시설을 비롯하여 카트리지, 앰프, 라우드 스피커 등의 단순성 오디오 음향 단품이나 콘솔형 전축류 일부만을 생산해오고 있었으나, 오디오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보면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전반에 이르는 [4]당시는 본격 스테레오 사운드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가이 R. 파운틴이 주도했던 탄노이의 각 사업 분야별 기존의 지표는 대음량 재생을 위한 음향 장비와 특수 산업에 관련한 통신 시설이 주 목적이었지만 이에 추가하여 마지막으로 뛰어난 성능의 하이파이 스피커 개발이라는 장르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브리티시 사운드의 원류로서 스피커 전문 브랜드인 탄노이 사운드가 본격 가동되었던 것이다.

탄노이 사운드의 원형(LSU/HF/15L)

애초에 전해 정류기의 개발로 시작된 탄노이의 출발은 측정 기법 및 마이크로폰의 개발과 양질의 스피커 연구 개발로 이어졌고, 드디어 1947년에는 최초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인 LSU/HF/15L이 등장하게 된다. 탄노이만의 고유한 기술로 개발되어진 이 독특한 유닛은 출하되면서부터 대단한 호평과 찬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당대 최고의 레코드 회사인 [5]데카(DECCA)는 고성능 레코드 FFRR(Full Frequency Range Recording)을 선보이면서 그 재생 시스템으로 탄노이의 첫 번째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6개 구입하여 자사 제작 판매의 전축에 내장하여 판매하였고, 레코드 녹음용 스튜디오의 주 모니터링 스피커로도 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사용하였다.

이 최초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오늘날 탄노이 사운드를 대표하게 된 동축형 유닛의 원형으로서 38cm(15인치) 구경의 우퍼 중앙에 중고음 재생용 트위터를 장착시켜 2웨이 시스템이지만 한 개의 점음원으로 재생음을 방사시킬 수 있게 한 획기적 발상의 스피커 유닛이었다.

그 설계는 사장인 가이 R. 파운틴과 더불어 탄노이의 역사와 함께 한 증인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로날드 해스팅 락컴에 의해 완성된 것인데, 듀얼 콘센트릭의 기본적 구조는 현재의 신 모델에조차 그대로 계승되어오고 있다. 다만 마그네트의 자기회로 재질과 콘지의 재질 및 구성에서 계속적인 대체와 보완이 부가되어 오면서 오늘날 웨스트민스터와 킹덤 사운드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성능면에서 보아도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광대역 재생 특성을 이룩하고 있었으므로 출하 이후 LP의 출현에 유래한 스테레오 사운드의 하이파이화 조류에 적극 부응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제작 구조는 티코날(Ticonal)계 마그네트 자기회로의 2중 결부가 중추적 핵심부였지만 중, 고역부 구성은 오늘날과 같은 멀티 스로트 타입의 형태 그대로였다.

또 자기회로 측면에 부착한 사각형 박스 안에는 우퍼와 중, 고역부를 크로스오버 디바이딩하기 위한 오일 콘텐서 네트워크가 내장되어서 특유의 부드러운 중고음부 음색을 실현하였다. 또 이 첫 번째 동축형 유닛은 발매와 동시에 탄노이가 판매하는 가정용의 콘솔형 전축에도 부착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모니터 실버와 오토그래프의 완성

 탄노이의 오토 그래프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디오의 세계에는 LP의 출현과 보급을 도화선으로 본격 스테레오의 하이파이 사운드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과 FM 스테레오 라디오 방송의 도입은 하이파이의 광대역 고음질화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바로 이같은 시대적 유행을 타고 탄노이 사운드는 비약과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고충실 하파이 사운드에 대한 요구는 당연히 광대역 고특성 재생음을 무기로 내세우던 탄노이 특유의 듀얼 콘센트릭 사운드에의 관심 집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이에 따라 탄노이 스피커는 발전을 가속화하게 된다.

이같은 탄노이 사운드의 도약과 성장에 있어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던 것은, 더욱 질을 높인 두 번째 동축형 유닛인 모니터 실버의 개발과 프레스티지 모델 라인의 원점으로 등장했던, 불후의 명기 오토그래프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탄노이는 자사의 개발품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첫 모델을 성능적으로 향상시키고 디자인과 구성을 발전시킨 두 번째 동축형 유닛 모델로서 모니터 실버를 개발하여 내놓게 된다.

기본적인 설계 구조는 그대로 두면서도 마그네트의 자기회로에 자속 보호용 커버를 부가하고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를 별도로 독립시켜서 전혀 새로운 신 모델로 개발해낸 [6]모니터 실버(Monitor Silver)는 개발되자마자 탄노이 자사의 스피커 시스템으로 활용되었다. 이 모니터 실버를 채용한 탄노이의 모델이 바로 오디오 역사상 몇 안되는 걸작품들 중의 하나인 오토그래프이다.

1953년 뉴욕 오디오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되어 불멸의 명기로 자리잡게 된 오토그래프는 역시 38cm(15인치) 구경의 우퍼인 모니터 실버를 [7]백로딩 구동으로 채용한 스피커 시스템이다.이 탄노이 불후의 명기는 높이 1.5m, 중량 85kg에 달하는 대형 시스템으로서 뒷 부분이 삼각형으로 마감된 코너 설치형 타입의 고품격 디자인이어서 고전적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으며, 나아가 놀라운 장중함을 보이는 재생음이 관현악의 밸런스와 질감을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특징을 보였다.

특히 현악기의 재생 질감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발군이어서 이후 현의 재생은 탄노이가 최고라는 이미지를 확립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한편 기존 모니터 실버의 15인치 구경외에 최초로 12인치 구경의 동축형 유닛 모니터 12가 선보여진 것도 바로 이 당시였다.

모니터 레드에서 모니터 골드로의 발전

오토그래프의 최초 모델에 부착되었던 모니터 실버는 1957년 다시 자기 회로를 강화하여 내입력을 한층 증대시킨 모니터 레드(Monitor Red)로 교체되었다. 실상 탄노이의 동축형 유닛 모델류에 모니터란 표시가 처음으로 채택된 것은 바로 이 모니터 레드에서였다.

마그네트 커버가 핑크색 계열의 함머톤 도장으로 착색된 데에서 유래한 모니터 레드는 저음역 담당 우퍼의 자속밀도가 모니터 실버의 12,000 가우스에서 13,000 가우스로 강화되었고, 보이스 코일의 내열 처리로 정격 허용입력이 50W로 늘어났다. 이 모니터 레드는 탄노이 역사상 최장수하며 듀얼 콘센트릭의 동축형 사운드를 대변하면서 탄노이의 명성가 성가를 절정에 이르게 한 명 드라이버 유닛이다.

과거 탄노이의 동축형 유닛이라면 대개 이 모니터 레드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또 가장 널리 칭송받았던 탄노이 특유의 동축형 사운드는 보통 모니터 레드를 장착한 오토그래프라 할 수 있었다. 탄노이는 이 당시 15인치형 동축형 유닛 외에도 1958년 15인치 다이렉트 라디에이터 방식의 우퍼와 12인치 중음용 유닛 그리고 10인치 혼 트위터로 구성되는 조합형 드라이버 유닛 시스템을 개발하여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얼마간 양산 판매되다가 LP의 스테레오 사운드가 본격화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자 기존 모노럴 사운드는 점차 하이파이 스테레오 사운드로 대체되어 갔으며, 또한 진공관 앰프 시대가 고특성, 고출력 트랜지스터 앰프 시대로 변모해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스피커 시스템 역시 대형 시스템에서 점증적으로 소형화되는 추세가 일반화되었다.

탄노이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 추세에 발맞추어 10인치 구경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인 LSU/HF/ⅢLZ를 개발하고, 이를 장착한, 최초의 밀폐형 북셸프 시스피커 시스템을 선보였으며, 중형 드라이버 유닛으로서 12인치 구경의 랭커스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트랜지스터 사운드의 도입이 본격화되자 탄노이는 다시 한 번 15인치형 동축형 유닛의 개량을 시도하게 된다. 이것은 기존 모니터 레드를 트랜지스터 시대의 광대역화 사운드에 부응시키기 위해서 더 한층 개선시킨 모델로서 황색 스토브에나멜 도장으로 착색된 까닭에 모니터 골드(Monitor Gold)로 불리워졌다.

1967년 개발된 [8]모니터 골드는 트랜지스터 앰프의 구동에 초점을 맞추어 공칭 임피던스를 8옴으로 낮추었으며, 우퍼의 최저 공진주파수를 가능한 낮추어 한층 낮은 대역의 저음부를 재생할 수 있도록 재생음역을 확장한 모델이다. 또 모니터 골드에는 확장된 저음역부에 따라서 음역별 재생 레벨 및 감쇠 특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크로스오버 네트워크에 고음부 에너지 레벨(Energy Level)과 롤 오프(Roll-Off) 기능이 부가되어져 있다. 모니터 골드는 1973년까지 생산되었다.

탄노이의 위기와 HPD 듀얼 동축 유닛

1970년대 들어서서 탄노이는 당시 노령과 병환으로 정상적인 경영과 운영이 어려웠던 창립자 가이 R 파운틴이 은퇴하자 미국계 경영 자본 참여자였던 하만 인터내셔날 그룹으로 실질적 운영권이 넘어가게 된다.

       
모니터 스피커 시스템 215             모니터 스피커 시스템


하만 카든, JBL, 오르토폰, 다이나코 등의 굴지의 오디오 브랜드들을 소유하고 있던 매머드급 미국 자본주 하만 인터내셔날 그룹은 탄노이사를 다시 계열사였던 식품회사 비트라이스(Beatrice Foods)에 넘기게 되는데, 이 때부터 탄노이는 급격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더구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어셈블리 조립 공장이던 [9]콘안센프리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는 변란으로 한 때 탄노이사는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생산 자체가 중단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탄노이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개발부 기술진 임원들의 비장한 각오로 재기하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 코트브릿지에 설립된 대규모 공장이 가동되면서 탄노이 개발진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전혀 새로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다시 만들어내게 된다. 이 새로운 동축형 유닛은 여러모로 이전 모델과 차이가 있는데, 무엇보다 진동판 후면에 어커스틱 가드(Acoustic Guard)로 8개의 보강 리브가 부착되어 있어서 순간적인 내입력이 크게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기존 동축형 모델의 형번이 LSU로 시작되던 것에 반하여 이 새로운 동축형 유닛은 [10]HPD로 명명되었다.

이처럼 존폐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던 당시의 탄노이사는 하만 인터내셔날의 소유가 되면서 미국 시장 위주의 독자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기존의 탄노이 미국 지사를 해체하였다. 또한 오토그래프, 요크 등 기존 탄노이의 상징적 모델 라인을 전격 생산 중지시키고, 아덴, 버클레이 등 일련의 알파벳 시리즈를 개발하여 내놓기 시작했으며, 1977년에는 고급형 프레스티지 모델로 소구경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장착한 버킹검을 개발하여 소개했다.

1970년대 초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투병생활 중이던 탄노이의 창립자 가이 R 파운틴이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도 바로 1977년이다. 한편 1979년에 탄노이는 HPD 시리즈의 유닛을 바탕으로 자기회로의 마그네트를 페라이트로 대체한 DC 동축형 유닛을 발매하였지만, 이는 탄노이 사상 최단명으로 생산 중단되는 불운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이 때에 자기회로에 사용되는 마그네트를 알콘맥스에서 페라이트로 바꾸어 사용한 K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K3808은 페라이트 마그네트를 채용하면서 모니터 레드 및 골드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설계 방식을 택하였다. 콘 후면의 보강 리브를 다시 제거하여 능률을 높였지만, 저음부 재생력은 다소 약화되었다. 반면 이 K3808은 장시간 재생 시에도 내구성이 확보되는 고강성 에지를 채용하기도 했다.

탄노이 복원과 GRF 메모리, 웨스터 민스터

1981년 탄노이의 신임 사장으로 선출되어 취임한 [11]노만 크로커(Norman Crocker)는 탄노이에서만 40여년간 근무해온 음악 이론가로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역시 창업 공신들인 T. B. 리빙스턴, R. H. 락컴 등과 더불어 하만 인터내셔날 산하 비트라이스로 넘어간 탄노이의 경영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나갔다.

       

  
그들은 탄노이가 미국 자본으로 넘어간 이후 회사의 명성과 가치가 퇴색해감을 안타가워 하면서 어떻게 하든 경영권을 되찾아 영국의 민족 기업으로 환원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중, 영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1981년 12월 드디어 탄노이의 경영권을 비트라이스로부터 완전하게 넘겨받게 된다.

이렇게 탄노이는 창립자인 가이 R 파운틴이 은퇴하면서 한 때 미국 기업의 산하로 판매된 적이 있었으나, 신임 사장이었던 노만 크로커를 비롯한 간부 사원들의 끈질긴 애착과 눈부신 협력으로 회사를 되사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탄노이사는 미국 기업의 합리적 마켓팅의 결과로 변모되었던 모델 라인을 전폐하고 다시금 전통과 관록의 모델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1981년 개발된 GRF 메모리는 바로 그 당시의 첫 작품으로 이는 창립자인 가이 R 파운틴의 업적을 기념하는 모델이기도 했다. 15인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인 3839M을 채용하여 위상반전형 인클로우저에 장착시킨 GRF 메모리는 62kg에 달하는 초중량, 고품격 외장을 가졌으며,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두터운 음장을 재생하여 탄노이 특유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었던 모델이다.

특히 GRF 메모리는 가이 R 파운틴의 기념 모델인 점을 중시하여 고인이 생전에 직접 스케치해 두었던 인클로우저 디자인을 그대로 채택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GRF 메모리는 일본과 우리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프레스티지급 고급형 모델로 고가구풍의 품위 있는 디자인과 아늑한 아날로그 사운드의 풍성함과 유연함을 무기로 오디오 애호가들의 한결같은 선망과 사랑을 받은 바 있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애호되고 있는 탄노이 사운드이다.

웨스터 민스터와 RHR 프레스티지

오늘날 탄노이 최초의 명기였던 오토그래프의 명성과 진가를 고스란히 계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웨스터 민스터(로열)는 115kg의 중량을 보유한 초대형 시스템으로서 탄노이 프레스티지 모델 라인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모델이다.

       

탄노이는 이 웨스터 민스터에 트위터와 저음 유닛의 진동판 재질을 마그네슘 합금으로 교체한 최고급 듀얼 콘센트릭 유닛 3839W를 개발하여 탑재시켰는데, 은도금된 하드 와이어링 네트워크가 내장되었으며, 3칸 격리의 풀 데드혼 타입 인클로우저를 채택하고 있다. 이 특이한 인클로우저 구조는 듀얼 콘센트릭 유닛 3839W의 성능과 음질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각기 분리된 3가지 타입의 혼 시스템 구동 방식을 채용한 것인데, 300Hz 이하의 저음은 3m에 달하는 복잡한 미로형 백로드 혼으로 재생하게 하고 300Hz에서 1kHz까지의 중저음역은 유닛 전면의 부드러운 더스트 캡 뒤에 장착된 혼 트위터에서 재생되도록 한 방식이다.

이처럼 고난도 인클로우저 기술과 고도의 사운드 기법으로 탄생한 초대형 호화판 모델인 웨스터 민스터(로얄)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탄노이 사운드로 대접받고 있는 최정상의 모델이다.

한편 1986년 탄노이 역사의 산 증인이자 듀얼 콘센트릭의 동축형 사운드 기법의 개발자이며 탄노이 복원의 공헌자이기도 한, 수석 엔지니어 로날드 해스팅 락컴(R. H. 락컴)이 정년 퇴직을 앞두자 탄노이사는 그의 탄노이에의 헌신을 치하하기 위하여 은퇴 기념작으로 RHR 프레스티지의 개발 프로젝트를 선물하게 된다.


       


R. H. 락컴의 50여년간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탄노이사는 18개월 동안에 걸쳐 무제한의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고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동축형 사운드를 만들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고 락컴의 개발 제작을 지원하여 탄생한 모델이 바로 RHR 프레스티지이다. R. H. 락컴이 직접 설계한 이 RHR 프레스티지는 ‘로날드 해스팅 락컴 프레스티지’라는 명칭이 붙여졌는데,

우선 호화스러운 인클로우저가 먼저 개발되고 낮은 디스토션과 높은 효율 그리고 우수한 주파수 응답 특성을 구현하도록 제작되었다. RHR 프레스티지는 리어 혼 로드 방식으로서 한정 모델로만 생산 판매되었으며, 설계 제작자인 R. H. 락컴의 친필 사인이 각 모델마다 새겨져 있다. 아마 이제껏 탄노이 듀얼 콘센트릭의 프레스티지급 최고의 모델 라인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미려한 외장과 우수한 음질을 겸비한 모델을 꼽으라면 필연코 이 RHR 프레스티지가 선택될 것이 분명하다.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개발자, R. H. 락컴

 1934년 탄노이사에 견습공으로 입사한 R. H. 락컴은 애초에 제조 라인의 담당자로서 듀얼 콘센트릭 사운드의 원형이 되었던 [12]동축형 유닛 기술 자체를 개발해낸 바 있으며, 후에도 계속하여 평생을 탄노이의 드라이버 유닛 개발과 사운드 개량에 바쳐온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하였다.

견습공 시절 그는 탄노이사의 제조공정을 완전히 습득하는 한편 스피커 유닛의 기초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락컴의 연구는 점차 탄노이사의 기술적 핵심 요소가 되었으며, 락컴이 개발 시도한 [13]최초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샘(Chamois) 가죽을 사용한 진동판으로 만들어진 8인치형이었는데, 50Hz의 저음역으로부터 10kHz의 고음역까지 재생해내는 모델이어서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초광대역 재생 유닛이었다.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첫 모델을 개발해낸 락컴은 당시 사회적 음향 여건을 고려하여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조건으로 첫째, 레퍼런스급의 고음질이어야 한다는 점과 두 번 째, 공공 음향(PA)용이어야 한다는 점의 두가지 전제 조건 하에 본격 동축형 사운드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락컴은 PA용으로 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대입력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높은 감도를 가질 수 있도록 15인치 구경이 이상적이라는 점과 가청 대역 내에서 균일한 재생 주파수 응답을 얻기 위해선 최소한 2웨이 방식은 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12인치 피스톤 구경을 가진 15인치 우퍼 유닛은 지향성과 콘 자체의 손실로 인하여 재생음역의 최상한을 1kHz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으므로 락컴은 이 1kHz를 2웨이의 크로스오버 포인트로 결정하였다.

또한 고음역에 있어서 1kHz 이상 20kHz까지를 재생시키기 위해선 혼 컴프레션 드라이버만을 사용해야 했다. 따라서 락컴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원형은 15인치 구경의 우퍼와 혼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트위터에ㅣkHz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가지는 기본 틀로 확정되었던 것이다.

1951년 R. H. 락컴은 탄노이의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되어서 모든 신제품의 개발과 특수 시스템 설계를 담당했다. 이후 락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된 모델들은 모니터 실버, 모니터 레드, 모니터 골드, GRF 메모리, RHR 프레스티지 등 탄노이의 주력 명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1975년 탄노이의 연구 개발부가 코트브리지로 이전해가면서 락컴은 디자인 고문으로 추대되었는데, 그 후로도 그는 특수한 연구 개발만 담당하면서 슈퍼 레드 모니터와 웨스트 민스터 등을 비롯하여 업무용 시스템인 와일드 캐츠 등을 개발해냈다.

듀얼 콘센트릭의 탄노이 사운드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사용한 탄노이
1926년에 설립된 영국의 간판 스피커 브랜드 탄노이는 브리티쉬 사운드의 원조로서 무려 70년에 이르도록 전통과 관록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탄노이만의 특유한 기법과 사운드를 건재하게 지켜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스피커 시스템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탄노이는 영국과 유럽의 최고급 간판이자 미국의 알텍, EV, JBL, 인피니티 등과 더불어 세계의 스피커 사운드를 양분하는 주역으로서 활약하여 왔다. 이러한 탄노이 사운드의 발전 상황과 위상을 조명하여 보면 그 핵심의 기술 사상은 한마디로 듀얼 콘센트릭의 동축형 사운드로 집중됨을 알 수 있다.

1947년 최초로 본래의 디자인 원형이 완성되었던 동축형 2웨이 단일 유닛,듀얼 콘센트릭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탄노이만이 가지는 특유의 기술적 테마가 되어오고 있다. 오로지 동축형 유닛만을 사용하는 듀얼 콘센트릭 사운드의 기술과 기법은 그것 자체가 탄노이 혈통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며, 나아가 ‘탄노이즘’이라 할 탄노이 사운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탄노이 사운드 기법은 바로 이 동축형 유닛 하나를 가지고 다채로운 인클로우저에 담아냄으로써 여러 가지 음질적 변화를 추구한 끝에 보다 개선된 시스템으로 완성한다는 설계 기조이다. 본래 탄노이의 동축형 유닛은 10인치, 12인치, 15인치의 세가지 타입이 있을 뿐으로 지향하는 음질 수준이나 방향 그리고 튜닝하는 시스템 규모에 따라서 이 세가지 타입의 동축형 유닛 하나를 선택하여 복잡 미묘한 시스템 튜닝의 인클로우저 기법으로 최종적인 음질을 다듬어내는 방식이 바로 탄노이 사운드인 것이다.

1950년대 컴파운드 혼 시스템의 인클로우저를 성공적으로 채용한 탄노이 불후의 명기 ‘오토그라프’를 완성시킨 이래 최근 킹덤에 이르기까지 탄노이는 최고급 모델 라인으로서 일련의 프레스티지 모델들을 하나 하나씩 발표하여 성공시켜 왔지만, 언제나 그 중심과 근거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 듀얼 콘센트릭의 동축형 사운드였다.

탄노이의 현대화, 킹덤의 출현

 Tannoy(kingdom)

현재 탄노이의 스피커 시스템 모델 라인은 모두 세가지 장르의 범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에서 탄노이 하이파이 사운드의 최고급 전통을 대표하는 프레스티지 시리즈가 그 첫 번재 모델 라인인데, 이는 오토그라프의 컴파운드 혼 시스템을 계승하고 있는 최고의 모델 웨스트민스터 로얄을 정상으로 GRF 메모리, 에든버러, 켄터베러, 스털링 등이 등급별로 라인업되어 있다. 또 여기에 최근에는 하이엔드 사운드의 고특성, 광대역화에 발맞추어 전혀 새로운 프레스티지 모델로서 킹덤이라는 또 하나의 레퍼런스 모델을 개발하여 기존 라인업에 성공적으로 추가시키고 있다.

스털링과 에드버러로부터 캔터버러나 GRF 메모리를 거쳐 웨스트민스터 로열에 이르는 탄노이 프레스티지 모델 라인은 듀얼 콘센트릭이라는 드라이버 유닛 기법 한가지만으로 일관하여 음악적 완성도를 부단하게 개량해오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음악성을 최고의 품격으로 마무리해온 탄노이 하이엔드 사운드의 이력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중에서도 웨스트민스터 로얄은 탄노이 사운드 신화의 완성작으로서 지난 수십년간 탄노이만이 이룩해낸 전통과 관록의 결집체(結集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웨스트민스터 로얄은 최초의 명기, 오토그래프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살아있는 탄노이의 신화 자체임에 틀림없다.

반면 디지탈 오디오 시대 한 복판에서 새롭게 등단(登壇)하고 있는 [14]킹덤의 출현은 단순히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産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생생한 오늘의 사운드 형태로 탄노이 음역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웨스트민스터와는 또 다른 별개의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탄노이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젊고 싱싱한 새 군주(君主)로서 킹덤을 내세우면서 탄노이 사운드의 세대 교체와 더불어 탄노이 사운드의 현대화라는 전혀 새로운 아성(牙城)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탄노이의 두 번째 모델 라인은 디지탈 시대의 새로운 고특성 사운드를 지향하는 데피니션 시리즈이고 마지막 모델 라인은 장구한 탄노이 스피커 사운드의 기술 경험들이 집약된 스튜디오 모니터 및 업무용 SR 시리즈이다. 특히 스튜디오 모니터 및 업무용 SR 시리즈는 지난 70여년 탄노이 기술과 기법 그리고 사운드 폴리시 등이 고스란히 담겨진 모델 라인인 동시에 새로운 디지탈 시대의 기술 흐름에도 적극 부응하는 기술과 음질의 혁신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이상으로 볼 때에 프레스티지 시리즈의 모델 라인은 탄노이 전통의 하이엔드 사운드라 하겠으나,나머지 두 개의 모델 라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거나 특별한 용도에 적응한 현대파이거나 오랜 세월 다듬어 오면서 개량과 보완을 거듭해온 개량파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탄노이 사운드의 현대화에는 기존 프레스티지급 하이엔드 사운드의 고급 기술력은 물론 오랫동안 숙성시켜온 업무용 SR 모델 라인의 안정된 기술 경험과 새로운 시대의 디지탈 사운드화 음질 개선책들을 모두 포괄하는 적극적이고도 총체적인 사운드 기법들이 동원되어 활용되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용어 설명

[1] 듀얼 콘센트릭 유닛 : 음원의 동축 위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중, 저역용 우퍼 중앙의 축상에 고음 재생용 트위터를 위치시킨 2웨이 드라이버 유닛을 듀얼 콘센트릭 유닛이라 한다. 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대표적 제조 브랜드가 탄노이인데, 탄노이 외에는 미국의 알텍이나 독일의 젠센 등에서도 유사한 드라이버 유닛을 개발, 생산한 바 있다.

[2] 전해 정류기 : 가이 R. 파운틴이 개발해낸 전해 정류기는 탄노이라는 상표로 널리 보급되면서 라디오, 앰프, 통신기 등 직류 전원 공급이 필요한 일련의 기기류들에게는 결정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정류 전원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정류기의 존재야말로 기기 발전에 엄청난 촉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3] 공공 시설의 SR 음향 사업 : 제 2차대전 후에 탄노이의 SR 음향 사업은 급격히 활성화되었는데. 뉴욕의 유엔 빌딩은 물론 제네바와 파리의 전략 사령부와 연합국측 통역장비 시설 그리고 호화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의 통역 및 음향 시설 등이 모두 탄노이의 시공으로 완성된 시설들이다.
때문에 당시 탄노이는 국제 회의용 통역 장비 시공 분야의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4] 당시 : 이 때는 미국 콜롬비아가 최초로 LP를 발매하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이로써 오디오 음향도 모노럴 사운드에서 스테레오 사운드의 하이파이화가 진척되었다.

[5] 데카 : 당시 데카는 레코드 뿐만 아니라 고급형 카트리지나 톤암 그리고 콘솔형 전축 등을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했는데, 탄노이의 동축형 유닛 1호기를 구입하여 자사의 데코타라는 전축에 부착하여 시판하였으며 나아가 녹음 스튜디오의 모니터에도 이 동축형 유닛을 사용하였다.

[6] 모니터 실버 : 탄노이의 모니터 실버는 대표적인 동축형 드라이브 유닛으로 이름난 모델이다. 자속 보호용 마그네트 커버를 함머톤 실버로 도장한 것에 근거하여 모니터 실버란 명칭이 부여되었다. 네트워크는 소형화하여 별개 몸체로 분리 부가되어 있다.

[7] 백로딩 구동 : 오토그래프의 저음강화 방식은 우퍼의 후면 방사음으로 하여금 인클로우저 내부에서 복잡한 구조의 미로 통로를 거치게 하는 것으로 주로 350Hz 이하의 저음역 재생에 초점을 맞춘 설계이다. 따라서 오토그래프는 2웨이 방식임에도 실제로는 3웨이 방식처럼 동작하는 특징을 가졌다.

[8] 모니터 골드 : 모니터 골드의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는 5단계 별로 고음부 에너지 레벨(Energy Level)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과 4단계별로 고음부 감쇠 특성을 선택할 수 있는 롤 오프(Roll-Off) 기능이 부가되어 있다.

[9] 콘안센프리 공장에 화재가 발생 : 이 화재로 듀얼 콘센트릭 유닛 제조에 필요한 콘 재료 및 부픔들이 모두 불타서 없어져 버린 결과 탄노이는 한 때 동축형 유닛의 생산 자체를 중단하였다.

[10] HPD : HPD는 High Performance Dual Concentric의 이니셜을 딴 약어이다. 이 HPD 유닛은 하이 파워의 내입력을 실현하여 무려 85W의 정격 허용입력을 실현하였다.

[11] 노만 크로커(Norman Crocker) : 노만 크로커는 1980년대 초반 미국 자본에 넘어건 탄노이사의 경영권을 영국으로 되찾아온 일단의 탄노이 임원들의 핵심적 중심 인물로 학창 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연주가를 지망했던 음악 애호가였다고 한다. 탄노이사의 창립 공신이자 후임 사장을 역임했다.

[12] 동축형 유닛 기술 자체 : R. H. 락컴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개발하게 된 것은 기존 SR 스피커 유닛을 가정에서 들을 수 있도록 개조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 한다.

[13] 최초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 : 이 최초의 모델은 현재의 타입과는 반대로 저음용 우퍼 뒷 쪽에 고음 드라이버를 위치시켰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광대역 재생 특성을 구비하고 있는데다가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조금만 조절하여도 위상 차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14] 킹덤 : 탄노이의 새로운 레퍼런스 모델인 킹덤의 재생 음역은 전형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중심으로 상하 극한 대역을 슈퍼 트위터와 서브 우퍼로 보강하여 광대역 사운드를 도모하는 구성이다. 킹덤을 위해 신설계로 개발된 12인치 구경의 고효율 듀얼 콘센트릭 유닛이 재생하는 음역은 100Hz에서 15KHz에 달하는 충분히 넓은 대역이다.

최고음부를 재생하는 수퍼 트위터는 네오디움 마그네트의 강력한 자기회로를 내장한 25mm 구경의 알루미늄 재질로 성형한 하드 돔형이며, 최저음부의 초저음을 재생하기 위한 서브 우퍼는 76mm 구경의 보이스코일을 적용한 18인치 구경의 콘형 우퍼이다. 결국 12인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동축 상으로 1.1KHz에서 대역 분할이 되고 있는 것이므로 킹덤은 4웨이 3스피커 시스템이라는 멀티웨이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전통의 기법과 첨단의 튜닝 감각을 조화시킨 결과인 것이다.

킹덤의 인클로우저는 내용적 370리터, 중량 170kg에 달하는 웅대한 규모로서 주 프레임이 되는 메인 캐비닛은 고밀도 메다이트 재질이며, 검정색의 정교함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또 전후면의 배플에 부착한 캐비닛은 우수한 음질 특성의 자작나무가 전격 채용되고 있으며, 미세한 공진과 부밍성 울림을 추방하기 위해 사용한 사이드 패널의 재질은 벚나무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려한 음악적 잔향을 가지는 자작나무로 전후 배플면을 마감함으로써 탄노이 사운드 특유의 오리지낼러티를 살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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