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inoni"의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 in G minor)" 는 현악기와 오르간 반주로 이루어진 슬픈 곡입니다.
곡의 첫 부분부터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을 저미게 하면서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데, 특히 중간에 현악기와
오르간이 한꺼번에 연주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하는 느낌이 듭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출발해 점차 무엇인가를 향해 고조되고, 마침내 무너져 내리는 듯 오르간의 음과 함께 하는 바이올린의 흐느끼는
선율은 죽기전에 꼭 들어봐야 하는 클래식1000곡으로 등재 되어 있으며, 트럼펫 협주곡, 바이얼린 협주곡이 함께
들어있는, 이음반은 1972년 프랑스 ERATO 레코딩 입니다.
-Tomaso Albinoni(1671~1750)
167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태어난 알비노니는 종이 제조업과 판매업을 크게 하던 부유한 아버지밑에서 물질적으로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다. 음악수업은 조반니 레크렌스에게서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확실치는 않다.
알비노니는 초기에는 성악과 바이올린을 공부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나 작곡에 전념하여 1694년에는 그의 첫번째 오페라 "팔미라 여왕, 제노비아(Zenobia, regina de Palmireni)"와 첫 기악곡집인 "트리오 소나타(Sonata a tre, op.1)"를 완성하였다.
이 시기에 알비노니는 직업이라기 보다는 즐거움을 찾는 대상으로 작곡을 하여 뛰어난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교회나 궁정 음악가로 활동은 하지않았다. 하지만 1708년 부친이 작고한 이후, 가업을 동생에게 맡기고 본격적인 직업으로 작곡활동을 시작하였다. 1694년부터 1740년 사이에 50여편의 오페라 작곡을 비롯하여 40곡이 넘는 칸타타와 다양한 편성으로 구성된 79개의 소나타, 59개의 협주곡, 8개의 교향곡을 포함한 폭넓은 기악곡을 작곡하는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신포니에 에 콘체르티(Sinfonie e Concerti)",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티(the concerti for solo violin)" 그리고 "독주 오보에와 2개의 오보에를 위한 콘체르티"등은 그의 선율적인 재능을 여실히 들어낸 작품들로 평가를 받고 있다. 후대에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이들 작품의 주제에 의한 키보드 푸가를 작곡하기도 하였으며 "트리오 소나타"와 "G단조 소나타"를 기초로 하여 지아조토가 편곡한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는 오늘날에도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알비노니는 1703년 플로렌스와 그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1722년, 바바리아 선제후의 초청으로 뮌헨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베네치아에서 작곡을 하면서 평생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오페라 소프라노로 활동하였던 마르게리타 리몬디(Margherita Rimondi)와 결혼하여 여섯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1750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Georg Friedrich Hendel"- violon.
"Hendel"은 1685년 2월 23일 독일의 삭소니주 할레에서 태어나, 1759년 4월 14일 영국에서 영면했는데, 이 74년의 전 생애 중 47년간은 영국에서, 27년간은 독일에서 살았다.
그의 부친은 헨델을 법률가로 만들려고 생각하여 할레 대학에서 법률을 배우게 했다. 그러나 헨델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또 천재적인 재능이 보였으므로, 마침내 부친도 마음이 변해 할레의 음악 교사 짜하우에게 배우도록 했다. 헨델은 17세 때 할레 교회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헨델은 선천적으로 가극을 좋아해서 그 방면의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한 두 개의 가극을 만들어 20세 때 「알미라」를 상연했다.
후에 이탈리아 각지를 4년간 여행하여, 이탈리아 음악의 진수를 알 수가 있었다. 1710년 하노바 후작에게 알려져 그 궁정에 초청을 받아 음악장에 취임, 이듬해 가극 「리날도」를 런던에서 상연, 이어 많은 가극을 작곡 상연했으나 당시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극의 작곡과 상연에 온 심혈을 기울인 헨델은 마침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허약해져서, 요양을 한 뒤에 다시 가극에 몰두했다. 그러나 가극으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여기(餘技)라고 여겨졌던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운명을 개척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오라토리오는, 세인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메시아」는 1742년 4월 13일에 더블린에서 초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이 성공에 기분이 전환된 헨델은 잇달
아 오라토리오를 썼고, 마침내 오라토리오로 위대한 악성의 영관(榮冠)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오라토리오는 이 시대의 바흐와 견주어 음악의 아버지이며 어머니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메시아」 ·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 · 「유다스 마카베우스」 · 「사울」은 하이든의 「창조」와 함께 불후의 명작이다.
그의 대표적 걸작인 「메시아」 중의 할렐루야 코러스는 하이든이 그 연주를 듣다가 코러스가 높이 합창되었을 때, 무의식 중에 '저편에 신의 영광이 나타났도다’라고 외치며 「천지창조」를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전해진다.
헨델은 1751년에 오라토리오 「예프타」를 작곡하고 있는 동안에 장님이 되었으며, 마침내 1759년 4월 14일, 성 금요일의 아침 8시에 세상을 떠났다. 영국 국왕은 헨델이 음악에 남긴 공적을 기려서 그 유해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시켰다.
바흐와 헨델은 같은 시대의 독일 음악가이면서도 평생 동안 끝내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바흐는 헨델을 깊이 존경하였고, 헨델의 작품을 사모해서 아내와 함께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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