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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or Oistrakh"가 연주하는 "violin 명곡들(Chausson의poeme외)"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6. 12. 26. 20:15

"Ernest Chausson(1855~1899,프랑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취미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성인이 되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독일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들은후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재능은 스승인 "마스네"를 감동 시켰다.

30대에는 파리 음악계에서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데, 자신만의 음악을 위해 바그너 스타일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유명한 작품[시곡 poeme]을 완성후 44세의 나이에 자전거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에르네스트 쇼송"은

생전에 국립음악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시대 프랑스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음반에 실린 "시곡 poeme"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등은 유명한 바이얼린 곡들로 "오이스트라"의 열정 넘치는

연주로 감동을 받게될 것입니다. 녹음상태도 뛰어난 이음반은 1970년 U.S.S.R.의 "Mrlodiya"레코딩 입니다.




이고르 오이스트라흐, Igor Oistrakh (April 27, 1931 -     )

                                                       


러시아 태생의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1931년 4월 27일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바올리니스트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자(父子)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유명하였다.

3대(代)에 걸친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비인 현악파의 창시자 요제프 헬메스베르거(Joseph Hellmesberger)가 있지만 오이스트라흐 부자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이고르는 어려서부터 부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가르침을 받았고,그뒤 부친과 마찬가지로 명교수였던 표트르 스톨라르스키의 문하에서 6년 동안 사사했다.

제2차대전 후에 부다페스트 청년콩쿠르(1949),바르샤바 비에냐프스키 콩쿠르(1952)에서 우승한 뒤,1953년부터 서방세계에 모습을 나타내어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기교가 확실하고 표현이 자연스러우며 특히 감각이 날카롭다.

때문에 부친처럼 선의 굵기나 당당한 멋은 없지만 그 대신 청신하다.

그 점 역시 세대차를 느끼게 하는데,코간이나 이고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들으면 아우어학파의 전통적인 결함이 점차 제거되면서 러시아류(流)의 바이올린 연주양식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레코드로는 부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협연한 것으로 구센스 지휘,로열 필하모니 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바하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외,역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의 협연으로 키릴 콘드라신 지휘,모스크바 필하모니 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 협주곡>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재미있는 앨범이다.

그리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지휘,모스크바 필하모니 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챠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결합반,로제스트벤스키 지휘,모스크바 방송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힌데미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4번> 결합반이 있다.

그밖에 피아니스트 긴스부르크와 협연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제2번> 결합반이 청순한 리리시즘이 넘치는 호연(好演)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QyXWkABo0&feature=player_embedded(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