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 [Benjamin Britten 1913∼1976] 영국 작곡가. 서퍽주 로스토프트 출생.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으며 F. 브리지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런던의 왕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시인 W.H. 오든과 함께 기록영화를 제작하였고, 그의 시에 작곡을 하기도 하였다. 1939년에 친구인 테너가수 P. 피어스와 함께 도미하여, 먼저 미국으로 이주한 오든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그룹과 친분을 나누었다. 42년 귀국한 그는 지휘자 쿠세비츠키의 위촉으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이 오페라는 45년 런던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그 뒤 마지막 오페라 《베니스에서 죽다(1973)》에 이르기까지 《루크레티아의 겁탈(1946)》 《앨버트 헤링(1947)》 《오페라를 만들자(1949)》 《빌리 버드(1951)》 《글로리아나(1953)》 《나사의 회전(1954)》 《노아의 홍수(1957)》 《한여름밤의 꿈(1960)》 《컬류강(1964)》 《타오르는 난로(1966)》 《방탕한 아들(1968)》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그의 음악은 참신한 작풍은 없으나 완벽한 기교와 풍부한 선율, 절묘한 표현력으로 많은 청중을 매료시켰다. 오페라 이외의 작품으로는 《전쟁진혼곡(1961)》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1946)》 등이 있다. Benjamin Britten (1913∼1976) 브리튼이 어렸을 때에 음악과 자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추어 가수였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는 5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어린 시절 내내 음악 지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작곡을 했다. 그는 11세 되던 해에 작곡가였던 프랭크 브릿지(Frank Bridge)에게 발견된다. 보수적인 영국에서 쇤베르크의 실험적 음악에 흥미를 가진 브릿지는 브리튼에게 작곡적 기초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많은 작곡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말러,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인상주의 음악, 영국의 작곡 전통, 영국의 민요전통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브리튼은 유명해진 후에도 스승 브릿지가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1930년 브리튼은 왕립음악학교(Royal College of Music)에 입학하여 해롤드 사무엘(Harold Samuel)과 아더 벤자민(Arthur Benjamin)에게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본 윌리암스(Ralph Vaughan Williams)와 같은 보수적인 작곡가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그 곳의 교육에 대해서 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 곳의 교수로 있던 윌리암스는 프랭크 브릿지와 같은 진취적 작곡가의 작품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브리튼이 직업음악가로서 받은 첫 주문 중 하나는 우체국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를 위해 작곡하는 일이었다(1935). 이 작업을 하면서 그는 당대의 유명한 시인 오든(W. H. Auden)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8년 후 오든의 시에 의한 음악을 썼다(Hymn to St. Cecilia, 1942). 브리튼은 2차대전 때에 전쟁을 반대하며 미국으로 이주했다(1939). 전쟁에 대한 그의 반감은 그의 『전쟁 레퀴엠』(War Requiem)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친구였던 테너 가수 피터 피어스(Peter Pears)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그는 1942년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그가 영국에 되돌아온 이유를 시인 크레브(Crabbe)의 시에 관한 기사를 읽은 것이 귀국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크레브의 시에 의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를 작곡하는데, 이것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된다. 그는 영국에 돌아와서 1947년에 영국 오페라단(English Opera Company)의 창설에 참여했는데, 이는 실내악적 편성으로 오페라를 하는 그룹이었다. 1948년에는 여러 시기의 작품들을 소규모적으로 공연하는 앨드부르(Aldeburgh) 실내악 페스티발의 발족에도 간여했다. 그는 이 페스티발에서 피아니스트로서(피터 피어스의 반주자로), 그리고 지휘자로서도 활약했다. 그의 명성을 기초한 『전쟁 레퀴엠』은 1961년에 작곡 되었다(초연: 1962). 이 작품은 20세기 영국 합창 작품 중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된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이 작품은 커벤트리 교회의 재건축을 축하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가사도 라틴어(레퀴엠 가사)와 영어(Wilfred Owen의 反戰詩)로 되어 있는데, 이 가사에 각각 다른 성악과 기악 그룹이 편성된다. (1)큰 그룹: 전통적인 교회 전례가사인 라틴어 레퀴엠 가사는 소프라노 독창/혼성합창/ 큰 오케스트라 그리고 오르간으로 반주되는 어린이 합창단에 의해 연주된다. (2)작은 그룹: 실내악적 오케스트라에 의해 반주되는 테너와 바리톤은 오웬의 9개의 시를 노래한다. 이 두 그룹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서로 다른 성격의 음악으로 처리된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이 두 그룹의 동시적 울림이 갖는 절박한 의미를 드러나게 한다. 브리튼은 음악가로서 영국에서 많은 영예를 누렸다. 그는 옥스포드, 레스터(Leicester), 헐(Hull)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에는 영국의 종신 귀족으로 임명된다. 그의 음악은 조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선율적이고 음향적인 부분이 섞여 있고, 파악하기에 용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12음기법적인 요소도 사용하고, 음향적 요소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성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20세기 작곡가로서는 보수적인 음악가에 속한다. 그의 주요 장르는 11개나 쓴 오페라였다(일반 오페라 8개, 교회 오페라 3개). 그의 다른 음악들도 오페라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들이 많다. 분위기를 그려내는 음향과 리듬의 사용이 그러한 성격을 갖게 한다. 브리튼의 잘 알려진 여타의 작품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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