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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첼로 소나타(1~5번 전곡)- '카잘스', '호르쵸프스키'의 명연주.[탄노이 사운드]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21. 2. 26. 18:40

"루드비히 반 베토벤(독일,1770~1827)"이 작곡한 수백개의 곡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곡들 이지만, 이음반에 실린

'첼로 소나타' 전곡 또한 첼로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곡들 입니다.  "카잘스"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호르쵸프스키"

{3번은 '오토 슐로프(1889~1958)의 피아노}의 명연주를 감상할수 있는 앨범 입니다.

이 음반은 2Lp로 되어있어 음반수집 메니아 들은 선호하지 않지만 '카잘스'의 독특한 첼로 연주는 '로스트로포비치'

등 타연주자 들과는 차별화된 연주(Bowing 기법)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수 없으며, '카잘스'가 왜 '첼로의 神'이라 하는

지를 보여 줍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명연주 전곡이 수록되어 있는, 1930년부터 1939년에 걸쳐 녹음된 이음반은 'EMI' 독일반인 "Electrola" 제작 입니다.

"카잘스"의 독특한 첼로연주는, 약간의 쇳소리(?)와 고역이 카랑카랑 합니다.이 음색은 "카잘스"연주의 모든음반에서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짙은 잿빛과 같은 이 음색을 선호하시는 매니아들이 많고, 역시 저도 좋아합니다.

~~'카잘스' 특유의 짙은 잿빛소리가 좋아 '베토벤' 첼로 소나타 1번~3번을 녹음 했습니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1~5번, 5곡은 바이올린 소나타 10곡보다 더 성공적 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는 '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선배 작곡가인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출발했다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첼로에 대한 "베토벤"의 독창적인 이해와 영감에 의해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1번,F-dur(1~3악장)-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1번 F장조는, "베토벤"의 음악활동이 중기로 넘어가기 전인, 1796년에 처음으로 작곡한 '2개의

첼로 소나타 Op.5' 중 첫 번째 곡이며,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첼로를 독주 악기로 새롭게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작품인데, 그 포문을 연 첫 작품이 Op.5-1이며 2악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G-moll(1~3악장)-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A-dur(1~3악장)-

'베토벤'이 작곡한 5개의 첼로 소나타는 피아노와 첼로의 매개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 입니다. 더군다나 이작품을 작곡 하고자 생각 했을 당시, 이장르에 대한 모델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며, 첼로는 16세기부터

콘티누오와 듀오악기로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첼로를 많이 사용한 '보케리니'나 '비발디'의 경우에도 첼로의 역활과 형식

이 바이올린 소나타와 다를것이 없었고, 여전히 베이스 아리아와 같은 오블리가토를 위한 악기로 사용 되었을 뿐입니다.

 

<첼로 소나타 1번,2번>

특히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첫 결실인"첼로 소나타1번,2번, Op.5"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위촉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그가 원래 "베토벤"에게 주문한 편성은 현악 4중주였는데, 하지만 "베토벤"은 음악 애호가이자 수준급 첼리스트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를 위해서 "첼로 소나타 Op.5"의 두 곡을 작곡해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왕 전속 첼리스트였던 "장 루이 듀포르"와 함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첼로 소나타3번>

덩달아 화려해진 피아노 파트마저도 첼로의 기세를 압도하지 못할 정도로 첼로 소나타 3번에서의 첼로는 충분히 위풍당당하고 남성적이다.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첼로가 저음역을 보강하는 역할만을 했던 통주저음 악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일부러 상기시켜야 할 정도로 첼로는 이제 완전한 독주악기로서 존재하게 된다.

베토벤은 〈첼로 소나타 3번〉에서도 전작의 Op.5의 1, 2와 달리 3악장 구성의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느린 2악장은 배제시켰다. 대신 2악장은 빠른 스케르초로 대체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3악장을 느린 템포의 아다지오 칸타빌레로 도입했는데 피아노의 선율에 얹힌 첼로 특유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음색이 돋보인다. 느린 서주는 곧장 경쾌하고 활기찬 알레그로 비바체로 이어져 박진감 넘치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Pablo Casals(1770~1827)-

대가다운 기교, 세련된 해석, 최고의 음악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어린 나이에 작곡·첼로·피아노를 배운 뒤

1891년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했다. 마드리드와 브뤼셀에서 더 공부한 뒤 1896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란 테아트로 델 리체오의 수석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이무렵 왼손의 포지션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고 좀더 자유로이 활을 움직이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는 듯하고, 노랫소리를 곁들여 중얼거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했다. 1898~1971년 세계 곳곳을 순회했으며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 자크 티보(바이올린)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해 명성을 떨쳤다. 첼로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 후 1919년 파리의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의 창설을 도왔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했다.

파시즘에 공공연히 반대하여 1936년 카탈루냐와 프랑스의 국경 근처 프라드로 강제 이주당했다. 스페인 내란(1936~39)이 끝난 뒤 귀국을 거부했다. 1946년에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에 항변하기 위해 공개 연주회에서 은퇴했지만, 1950년 다시 지휘와 음반활동을 재개하여 부분적으로 침묵시위에서 벗어났다. 1956년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해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평화를 위한 개인적 음악운동을 계속했다. 모더니스트들의 메마르고 정직한 해석을 거부한 낭만주의자로서, 바흐에 대한 애정이 그의 감수성의 핵을 이루었으며, 특히 6곡으로 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연주로 바흐 첼로곡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앨버트 칸과 공저한 자서전 〈기쁨과 슬픔 Joys and Sorrows〉(1970), H. L.커크가 쓴 〈파블로 카잘스 전기 Pablo Casals:A Biography〉(1974)가 있다.

특히 200년동안 빛을 보지못하고 묻혀있던 "바흐- 무반주첼로"의 악보를 헌책방에서 구입해 연주하기 시작한

일화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