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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 내사랑 내곁에' '사랑 했어요' '골목길' '그어둠 그별빛' '회상'[탄노이 사운드]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6. 4. 25. 21:00

80년대 젊은시절, 꿈은 높지만 현실은 그꿈을 외면하고 있을때, 울음 섞인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내듯이 우리들의 내면

을 대변해 주던 "김현식"의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자동차 안에서도 카세트(그당시에는 CD플레이어는 없었음)로

수없이 듣던 노래입니다. 가끔 한번씩 들으면서 추억속으로 여행을 해봅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김현식'의 이음반은 1984년 서라벌 레코드社의 음반들 입니다.

-"김현식"의 베스트 앨범 중에서-

-'내사랑 내곁에'-

-'사랑 했어요'-

-'골목길'-

-"회상"-

-"그어둠 그별빛"-

어둠 그 별빛

어둠은 당신의 숨소리처럼 가만히 다가와 나를 감싸고

별빛은 어둠을 뚫고 내려와 무거운 내마음 투명하게해

우 우 우우우

어둠은 당신의 손수건처럼 말없이 내눈물 닦아주고

별빛은 저하늘 끝에서 내려와 거치른 내마음 평화롭게해

우 우 우우우

땅위의 모든것 깊이 잠들고 에헤 그 어둠 그 별빛

그대 향한 내그리움은 다날려주네 꿈속에서 느꼈던 그대 손길처럼

아하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주네

밤마다 내게 별빛을 보내주네


땅위의 모든것 깊이 잠들고 에헤 그 어둠 그 별빛

그대 향한 내그리움은 다날려주네 꿈속에서 느꼈던 그대 손길처럼

아하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주네

밤마다 내게 별빛을 보내주네

-김현식(1958~1990)-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외가에서 보냈다. 1964년에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2학년 때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죽향초등학교에 전학하였고, 3학년 때는 서울에 있는 삼청초등학교로 전학하였다. 당시 전인권이 그 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서로 누군지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가 학군제의 시행으로 5학년 때 수유초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며 1970년에 전교 4등으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 기타를 처음으로 접했으며, 아이스하키부에서도 활동하여 중학교 초반에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의 성적이 하락했다. 그러다가 간장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워져서 방황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책을 다시 잡았다.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1973년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밴드부에 들어갔으나 선배의 악기를 만진 이유로 혼내는 선배들과 주먹다짐을 벌인 후 밴드부에서 탈퇴당해 1학년을 마치기 전이었던 1974년 가족들 몰래 자퇴서를 냈다

자퇴 후 종로의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 다녔고 1975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으며, 방황을 하다가 기타를 메고 종로에 있는 한 음악 다방에서 통키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명동의 큰 무대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가수 이장희의 동생인 이승희와 한 호텔의 나이트 클럽에서 스타 가수들의 무대 사이를 잇는 들러리 역할로 듀엣활동을 하였으며, 이승희와 결별한 후에는 김동환작약도에서 지옥훈련을 감행한 후 듀엣으로 활동했다.

1976에 이장희의 주선으로 음반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1978년에 녹음작업이 끝나고 음반이 나오기 기다리던 중 이장희가 미국으로 여행갔다가 그곳에 매료되어 장기 체류를 하고 김현식이 대마초 사건까지 연루되어 정식 데뷔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곡으로 한 1집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그 때는 그의 음악적 노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 앨범에서 그는 맑은 미성을 바탕으로 소울 록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1982년에 결혼하여 그 해 12월에 아들 김완제를 얻게 된다. 동부이촌동 공무원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인근에 피자가게까지 열어, 직접 배달도 하는 등 결혼이 가져다준 행복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1년 후에 가게를 접고, 세종호텔 나이트클럽에 나가면서 밤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후에 크라운호텔과 하얏트 호텔에서도 활동했다.

2집 활동 때까지는 주로 밤무대에서 공연을 많이 하였다. 전인권과 함께 한 그룹 '검은 나비'의 리드 싱어 및 조원익이 리드하던 그룹 '동방의 빛', 정성조의 '메신저스'에 들어가 밤무대 최고의 가수로 부각되었다.

 

1985년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와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였으며 이들의 연주로 3집 앨범을 녹음한다. 그러다가 녹음 후에 유재하가 탈퇴하고 장기호의 소개로 박성식이 들어왔으며, 1986년에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한 3집 앨범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30만장이상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계산된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방송의 속성에 거부감을 느껴 방송 출연을 자제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