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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noy"오토그라프"사운드.

"김정호"의 노래-'이름모를 소녀''보고싶은 마음''꿈을 찾아''저별과 달을'[탄노이 사운드]

chocho(조)의 탄노이(tannoy) 2019. 3. 30. 19:41

1970년대, 우리는 먹고사는 것의 해결을 위한 경제발전과, 장발이나 짧은치마의 단속을 피해 골목으로

도망 다니곤 하던 시절, 젊음을 마음대로 표출 할수도 없었던 시절 , 그 시절에 우리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던,  33살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본명이 조용호인 천재 작곡자 이자 가수인 '김정호'가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1952년 광주 출생으로 명창 김소희와 활동했던 창의 명인인 어머니의 음악적인 재능 을 타고났다.

데뷔곡인 "이름 모를 소녀" 와 "보고 싶은 마음""작은별""하얀나비. 등 많은 힛트곡을 불렀고, "어니언스"

가 불러 힛트시킨 곡들 대다수가 김정호가 작곡했던 것을 보면 가히 천재라 할수 있겠읍니다.

 

-"김정호"의 대뷔곡인 "이름 모를 소녀"는 1970년대 최고의 힛트곡 입니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 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물결 바람에 이 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 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물결 바람에 이누 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김정호'의 "보고싶은 마음"-

-작은새.-

-'김정호'가 부르는"꿈을 찾아"-

-'김정호'가 부르는"저별과 달을"-

1975년, 대기업(계열사가 몇개씩 있는 그룹기업)에 입사하여 2년차, 그당시의 대기업에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상상이 되지않는 社風 이라는게  있었는데, 상사의 말이 곧 법이되고, 일정한 출근시간,퇴근시간이 거의 없고, 저녁회식도 사생활은

거의 반영이 되지않는, 私는 무시되고 公만이 존재했던 시절, 그 시절을 우리는 유신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제약이 많던

이시대에 활동하던 장발족 남자가수들은 '행복의 나라'를 염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에 살아왔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그때는 지금 보다도 흡연자가 몇배는 더 많았지만 길거리에 담배꽁초는 훨씬 적었던 것으로 기얻이 되고, 당시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잘 뛰는곳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자"라는 구호와, 변소(화장실) 입구에는 어김없이 "공중도덕을 지킵시다"라고 적혔습니다. 이런 글들이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문화를 발전 시키는 밑거름이 된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요즈음,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대수롭지않게 던져버리고, 주차장 뒷편에는 어김없이 쓰레기 봉지가 널려있는 요즈음 보다는 몸은 더 피곤해도 우리들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았을까요?(아래 사진은 대기업에서 년중행사로 실시했던 극기훈련의 한 장면.)

행복의 나라로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